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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사를 통해 본 사회적 가르침
작성자박승일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2 조회수411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회교리, '참호전'만 치르던 교회가 세상과 교감한 결과물
역사를 통해 본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새로운 사태>부터 <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2011년 09월 27일 (화) 19:04:11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인천교구 사회교리학교 두 번째 시간이 "역사를 통해 본 사회적 가르침; '새로운 사태'부터 '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번 주제를 진행한 장동훈 신부(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우선, “신앙 행위는 실존적이고 전인적 고백이며, 행동습관과 삶의 방식에 해당한다. 교회 역시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해석해왔고, 교회가 가르치는 사회교리를 이해하려면 교리가 지닌 성장의 장이자 해석의 장이었던 ‘역사’를 떼어놓고는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다”라고 운을 떼었다. 

또 사회교리를 공부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사회교리의 역사적 태동과 진행 과정을 파악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방법이라고 하면서, 1891년 발표된 첫 사회교리 <새로운 사태>부터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탄생 배경과 과정을 소개했다.  그 강의 내용을 지면으로 요약해 소개한다.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교회의 위기

르네상스가 시작된 14세기 전 중세는 이른바 ‘신의 시대’로, 신을 위한, 신의 뜻이 곧 인간의 뜻인 완벽한 조화와 질서의 세계였다고 한다면,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시대’는 인간의 이성이 대두되면서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인간의 재발견’은 중세의 태반을 이뤘던 교회에게는 ‘위기’가 되었다.

이어서 일어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비합리주의’와 ‘반이성’의 첨병이었던 교회를 주적으로 삼았고, 1790년 프랑스 성직자 공민헌장(성직자법)이 반포되면서 교회재산의 몰수, 자선을 위해 설립된 곳을 제외한 수도회들의 통폐합과 해산 등이 실시되었다. 인간의 시대에 교회는 민중을 수탈하고 현혹시킨 반이성적 세력이며 아무것도 생산할 줄 모르는 ‘죽은 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와 로마를 분리시켰고, 교회가 국가에 예속되는 ‘국가교회’를 등장시켰다.

이에 저항하며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의 영광’만을 되찾으려 애썼던 교회는 가톨릭 신자들을 사회적, 정치적 변두리로 내몰았고(1874년 교황청, 신자들의 정치참여 금지 교령 발표), 세상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고립,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세상에 나서지 못하고 ‘참호전’만 치르는 교회
교회는 한번도 세상을 앞서 본 적이 없다

   
▲ 장동훈 신부(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프랑스혁명이 불러온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산업혁명으로 비롯된 도시화, 농민의 빈민화와 빈부격차의 심화 등에 교회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교회는 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 전혀 새롭지 않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빈부의 문제에 대해 여전히 구휼과 자선, 직업훈련으로 대처하면서 구조적 문제를 보려하지 않았다. 또 교회는 더 이상 교황권이 절대시되지 않는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불안과 콤플렉스를 앓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가 한참이나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교회는 이 ‘새로운 시대’를 여전히 교회에 대한 도전으로만 받아들였다.

1864년 교황 비오 9세는 가톨릭 입장에서 배척되어야 할 80항목의 ‘시대적 유설’을 나열한 목록(Syllabus)을 주교들에게 보냈는데, 여기에는 범신론, 자연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까지 단죄의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또 얼마 후 소집된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에 대한 논쟁을 벌이며 ‘다시 중세로’를 주장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을뿐더러, 정치적 사건이 되어버린 공의회는 국가주의와의 충돌만 불러왔을 뿐이었다.

사회교리의 첫 문헌 <새로운 사태>
새상으로 나설 ‘용기’를 보여준 회칙

19세기 세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교회는 이 초유의 사태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교회역시 역사적 존재로서 세상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반응해야 했다. 이런 현상앞에 교회가 ‘세상을 다시 읽을 용기를 종합적, 체계적, 공식적으로 보여준 것이 1891년 레오 13세가 반포한 <새로운 사태>다.

<새로운 사태>는 ‘노동헌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구조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는 내용적 측면과 함께 ‘사회문제와 역사 현상을 식별하고 복음적으로 성찰하며 해석하는 것이 교도권의 중요한 직무임을 자각한 최초의 문헌’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제대로된 ‘전향’은 아니었다. 사회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한 오류를 직시했지만 여전히 예언자적 혜안이나 세상과의 적극적 교감 의지가 아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에 수세적으로 대응한 결과였다.

교회, 삼중관을 내려놓다. 2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와 단죄가 아닌 사목적 의지에 따른 ‘사목 공의회’

“기존 공의회들이 체제의 정비와 유설들의 교회 진입을 막는데 주력했다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시대에 대한 적응을 넘어 완전한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총체적이고 역사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폐허 위에서 절실하게 새로운 길에 대한 모색이 필요했다. 1962년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1965년 바오로 6세에서 마무리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 공의회이자 보편 공의회였다.

'지적'과 '차단'에서 ‘자각’과 ‘개방’을 지향했으며,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에 경직되어 있던 회의에서 주교들이 보편교회의 통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새로운 체험이었다. 이러한 교회 내 민주화는 ‘전례 개혁’을 가능하게 했다.

미사를 신자 대중에게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로부터 시작된 ‘전례운동’은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파악하고 성직자 중심에서 평신도들의 광범위한 협조를 가능하게 하는 근간을 마련했다. 그 결과물인 ‘전례 개혁’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온 가장 가시적이고 입체적인 결과였다.

교회,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작성된 유일한 문서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은 ”교리원칙을 바탕으로 현대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밝히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교회가 수세적 태도에서 떨쳐나와 스스로 외부세계와 관계를 새로이 할 용기를 가졌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어떤 정치적 체제에도 얽매이지 않지만, 모든 체제와 협력할 용의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는 구속, 결탁, 투쟁, 예속 등 다양한 국면으로 세속권력과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바티칸 공의회는 세속권력과 얽혀있던 과거의 악습과 단절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했고, 교회의 유익을 이유로 ‘세속 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포기할 것을 공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교분리의 입장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양심과 자유의 영역인 종교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초월적 영역으로서 종교와 현실적 영역으로서 정치가 별개라는 유아기적 이분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자신을 구원 여정 중의 하느님 백성으로 세상 한가운데 있음을 발견했기에 ‘역사적 도정’자체가 교회의 ‘속성’이라는 해석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믿음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 제자들의 공동체가 인간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모인 그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를 향한 여정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모든 사람에게 선포해야 할 구원의 소식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리스도 제자들의 공동체는 인류와 인류 역사에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체험한다.”(기쁨과 희망 1항)

그리스도인의 장은 ‘세상’이다. 인간의 모든 영역이고 인간의 모든 고통, 기쁨, 탄생과 소멸 모두가 ‘신앙하는 자의 자리’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성전만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자신의 신앙을 반추하고 복음의 빛으로 성찰하며 구체적 성사로 드러내도록 초대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대화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고 요란스런 시장통을 성전 삼아야 하며, 그 틈새에서 거룩한 도시를 발견하고 실현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교리는 취사선택 가능한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신앙하는 자의 총체적 존재방식’이며, ‘초대’다. 신앙하는 것은 신앙고백을 넘어 신앙의 내용을 사는 것이고 신앙인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그의 행동이다.

강의를 마치며 장동훈 신부는 "그러나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혁명적 내용과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현’면에서는 미완의 공의회다.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실현되지 못했다."라고 평가하면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다음 세 번째 시간은 10월 10일 ‘해방이후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감각, 사회교리’라는 주제로 조광 교수(고려대학교 사학과)가 이끌어 갈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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