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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세례는 하늘을 열었습니다.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3 조회수771 추천수2 반대(0) 신고
 
+샬롬 샬롬.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3,16-17)
 
하늘이 예수님께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하늘을 여는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의 죄로인해 닫혀 있던 하늘이 예수님의 세례로 인해 열렸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죄로인해 뵈올 수 없었던 하느님을 이제 당신이 직접 볼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묵상해 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찿아가셨다."(마태3,13) 갈릴래아와 요르단을 구약의 갈대바다와 요르단 강의 의미로 묵상해 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파스카의 여정에서 중요한 장소이지요.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위해 건넌 강이 갈대바다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건넌 강이 요르단 강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집트로 피신 가셨다가 돌아오신 곳이 갈릴래아 였고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를 떠나 나자렛에서 사셨는데 이제 공생애를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십니다. 나자렛에서 사신 의미는  아실 것입니다.
 갈릴래아를  이집트를 탈출 할 때 건넌 '갈대바다'의 의미로 보고, 요르단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해 건넌 요르단 강으로 묵상해 봅니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묵상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의미만으로도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고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예수님의 세례를 이집트 탈출 사건과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 안에서 묵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묵상합시다.
요한은 왜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를까요?
아직 하늘이 열리지 않았기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열어 주셔야 깨달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들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요한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었을 당시에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엘리사벳을 찿아오셨을 때는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알아보았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요한을 임신하고 있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셨고,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고 말하면서 성령으로 가득차서 이렇게 고백합니다."내 주님의 어머니가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루카1,39-44 참조)

루카복음의 증언으로 보면 요한은 어머니 태 안에서는 주님을 분명히 알아 보았습니다. 영으로는 알아보고 느꼈으나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인간이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는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태중에 있었을 때는 아직 이성과 지성이 아닌 영으로 느끼는 시기이고, 하느님은 인간의 눈으로 보고서 고백하는 분이 아니라 영으로 느끼고 알아뵙는 분이심을 말씀하시고 계심을 느낍니다. 요한이 이러한 영적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먼저 찿아오십니다. 태중에 있을 때에도 먼저 찿아주시더니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가 찿기도 전에 먼저 우리를 찿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세례를 엘리사 예언자가 일으킨 기적에 비추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엘리사 예언자가 일으킨 첫 기적은 물이 나빠서 이 땅이 생상력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들에게 소금을 가져오게 하여 물을 되살리고, 땅에 생명력을 주는 기적입니다.(2열왕2,19-22 참조) 
구약성경에서 '바다'는 보통 악한 세력이 활동하는 곳입니다. 요한 묵시록에 보면 '두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다고 표현합니다. 두 짐승은 악한 세력을 상징합니다. (묵시 13장 참조)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도 물에 사는 악한 세력이 예수님의 발 아래에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물이 나빠서 땅이 생산력을 잃었다고 하는 것은 악한 세력으로 인해 땅의 백성의 삶이 황폐하고 고통스럽다는 의미로 묵상합니다.

엘리사 예언자가 이 물에 사람들이 가져온 소금을 넣으므로써 물이 되살아납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소금이 되시어 나빠진 물에 직접 들어 가시려고 요한을 찿아 오셨습니다.

엘리사 예언자와 예수님께서 나빠진 물을 되살리시는 일을 하시면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당신이 능력이 없으셔서 일까요?

 다음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해 요르단 강을 건너는 장면을 통하여 예수님의 세례를 묵상해 봅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언제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시려고 모세를 앞장 세우시고 그 앞에는 당신의 천사와 구름기둥을 앞세우시고 갈대바다를 건너셨습니다.(탈출14,19 참조) 그리고 마음이 완고하여 입만 열면 불평이요, 본질적으로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가기를 밥먹듯 하는 백성이 뭐가 그리 좋다고 뭐가 당신께 도움이 된다고, 살 곳이 없으셔서 인간에게 당신의 거처를 만들라 명하시고 그곳에 거하시며 함께 하시길 자청하십니까? 가나안 땅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는 또 어찌하셨습니까?   먼저 강 한복판에 들어가셔서 그들이 다 건너기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여호4장 참조)

하는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여라 저렇게 하여라 명령을 내리셔도 될 터인데 꼭 몸소 먼저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과 똑같이 하시는군요.

 예수님은 왜 요한에게 세례를 요청하십니까?

먼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요한복음서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러나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요한5,19-20.30)

이 증언으로 묵상해 보면 예수님의 세례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이됩니다. 그러면 죄도 없으신 분에게 죄를 씻는 세례를 받도록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취하시고 영원히 계실 분이 아니기에 필요했다고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신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묵상에 맡겨드립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사건은 지금 우리가 받는 세례가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의미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묵상합니다. 바로 이 세상의 요한들에게 세례를 줄 자격과 권한을 부여해 주시는 사건으로 묵상합니다.

주님이신 예수님도 직접 받으신 세례이기에 하느님께서 직접 인정해 주시는 세례가 아니겠습니까? 이것보다 더 확실하신 증인이 더 필요하십니까? 그러므로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증 그 자체라고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들였다."(마태3,15)

요한은 하느님의 뜻을 다 이해했을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하시는 것으로 미루어 집작합니다.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뜻을 다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말씀에 먼저 순종하기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말씀에 먼저 순종하시면서 요한에게도 그렇게 해 주기를 요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말씀에 "예"로 응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마태3,16)

왜 요한에게 열리지 않고 예수님께 열렸을까?

이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시자 본격적으로 구원사업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묵상해 봅니다. 그 사업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의미는 아닐까요?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 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3,17)

하늘이 예수님께 열리고 하느님의 영이 예수님 위로 내려오시는 것과 하느님의 음성을 요한도 들었을까요? 왜 성경은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이렇게 전할까요?

저는 하느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이제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드님께서 겪으실 모든 일들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어주시는 것이겠지요. 당신의 아드님께서 인간의 육을 취하시고 당신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실 시점에서 받아 안아야하는 모든 것들을 얼마나 아파하셨을까를 묵상해 봅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전쟁터에 내 보내고 이제 막 실전이 벌어질 시점에서 느끼는 아픔과 같겠지요?그렇다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묵상해 봅니다.

하느님께 받는 선물 중에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이겠다고.

그것은  하늘이 열리는 것이고, 하느님의 영을 느끼는 것(현존체험)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선물로 족하셨습니다. 아마도 공생애 내내 오늘 받으신 세례의 은총으로 사셨을 것이라 느낍니다.

이상으로 저는 예수님의 세례는 물이 나빠서 생명력을 잃은 땅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돌아가시는 십자가 죽으심의 신비와 같은 의미의 사건으로 묵상을 마칩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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