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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의 기도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5 조회수844 추천수9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연중 27주간 수요일 - 주님의 기도

 


 

어렸을 때 가위에 자주 눌렸었습니다. 악령들에 의한 장난인 것처럼 생각되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떤 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처음엔 목소리가 안 나오다가 여러 번 하다보면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눌렸던 가위도 풀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예수님의 이름 대신 주님의 기도가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반복하는 것보다 더 편했고 주님의 기도가 한 번 끝나기 전에 항상 가위가 풀렸습니다. 아마도 그 때는 예수님보다는 ‘아버지’를 부를 때 더 힘이 났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까지도 힘을 얻기 위해 불렀던 분이 ‘아버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가위에 눌려도 두렵지 않았고 설사 가위에 눌리더라도 주님의 기도를 외우면서 그것이 풀릴 것을 걱정도 하지 않고 그냥 다시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는 마치 부모를 보지 못하여 불안하던 아이가 다시 부모를 찾은 것처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당신의 기도 안에는 보다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깊은 의미들을 한 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1.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땅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을 때 저주를 받았고 저주 받은 곳에는 하느님이 거하시지 않습니다. 이 구절에 합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을 하늘처럼 깨끗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더러운 상태에서 주님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2.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모인 이들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라 하면서 교회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안 될 것입니다. 아버지는 한 개인인 ‘나’의 아버지도 아니고, 또 세상 ‘모두’의 아버지도 아니고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 안에 모인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모이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 고백할 수 없습니다.

3. 아버지; 하느님의 아들은 독생자 그리스도밖에 안 계십니다. 그래서 오직 아드님만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드님은 당신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며 당신과 한 몸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그래서 그 분의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옆구리로부터 나온 피와 물로 만들어진 그 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분과 한 몸을 이루지 않고서는 누구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4.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모든 기도의 핵심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영광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에 불만과 불평이 존재한다면 온전히 하느님을 찬미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만족스런 이들은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구체적인 찬미는 미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미사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시며 제정하신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사의 봉헌이 없는 미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자신을 감사히 봉헌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5.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담과 하와의 죄로 하느님의 나라를 잃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참 행복입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이 주는 명예나 쾌락, 재물 등이 주는 헛된 행복을 추구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6.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하늘나라의 행복을 잃었지만, 성모님과 그리스도의 Amen을 통한 순종으로 그 죄를 기워 갚았습니다. 성모님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또 그리스도는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시며 하느님의 뜻에 No가 아닌 Yes, 즉 Amen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뜻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실천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라고 기도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7. 오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매일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생명의 에너지가 우리에게로 옵니다. 그러나 미사만큼 큰 기도는 없습니다. 음식도 매 끼니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오늘’의 양식을 청하는 것은 ‘매일’ 기도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8.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육체적으로 먹고 살 것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질제로 우리가 구해야 할 양식은 영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살과 피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오시는 양식입니다. 이 양식은 ‘성경말씀’(말씀의 전례)과 ‘성체’(성찬의 전례)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미사에 참례하지 않으면서, 혹은 성경말씀을 매일 먹지 않으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청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9.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내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나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청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으로는 절대 바칠 수 없는 부분입니다.

10.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유혹거리들에 가까이 머물거나 유혹거리들을 치워버리지 않으면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혹을 이길 힘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겸손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11. 악에서 구하소서; 죄를 짓고 바로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면서 악에서 구해 달라고 청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뿌리치면서 악에서 구해달라고 청해야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주님의 기도 안에 교회의 핵심적인 모든 가르침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입으로 의미 없이 반복하는 기도가 아니라 그 기도의 내용을 음미하며 그 기도에 합당하게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바쳐야 할 것입니다.

 

< 그대를 향한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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