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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요하 장편소설 『향수』의 소설적 재미와 그 의미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7 조회수305 추천수1 반대(0) 신고
서평
  


                  지요하 장편소설 『향수』의 소설적 재미와 그 의미



                                                                                                   조동길(공주대 교수·소설가)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가지고 있다. 지역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궁극적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일 것이다. 고향은 그 말만으로도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또한 고향은 세상을 살다가 지치고 힘들 때, 때론 위안으로 때론 정신적 휴식처로 늘 우리에게 힘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바로 향수다. 향수가 지나치면 병이 되기도 한다.

소설의 일차적 사명은 독자에게 재미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그 재미 속에 세상을 사는 지혜와 자신을 성장시키는 교훈이 들어 있다. 딱딱한 교훈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보다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장치가 등장했다는 주장도 있다. 소위 문학 당의정 설이 그것이다. 굳이 그 이론을 들추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의 수많은 소설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그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지요하는 다 알다시피 고향을 지키며 소설을 쓰는 작가다. 중앙에 올라가 활동했더라면 화려한 각광을 받았을 작품을 많이 생산해 냈지만, 지역에 머물며 문화 활동가로서, 그리고 지역 문학을 든든하고 굳건하게 지켜내는 버팀목 역할을 자임하는 전업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 장편소설 『향수』를 출간했다. 부제는 ‘들에는 오늘도 무지개가 뜬다’이며 지역신문에 연재할 때는 ‘고향 타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한다. 이 소설의 내용은 한 마디로 줄이면 허칠만이라는 농민과 그의 아내 한미숙의 연애와 결혼 생활 이야기다.

소설 중에 흔하디흔한 게 젊은 남녀의 연애 이야기다. 세계 명작이라는 소설 중에 연애 이야기를 담지 않은 게 거의 없고, 반면 발표되자마자 쓰레기처럼 폐기되는 소설도 대다수는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컨대 연애 이야기를 어떻게 소설로 형상화해 내고, 그 속에 보편적이며 영속성 있는 주제를 담아내는가의 여부가 명작과 졸작을 가려내는 기준이 된다 할 것이다.

『향수』는 몇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은 신문 연재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성의 흐름이 전작소설처럼 짜임새가 있고 균형감 있게 전개되는 작품 완성도의 미덕이다. 대개의 연재소설이 독자의 흥미 고려나 의무적 집필로 인해 밸런스가 흐트러지거나 산만한 진행이 되는 게 많은데, 이 작품은 그런 약점을 극복하여 전체가 매끄럽고 유연하게 흘러간다. 작가의 내공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허칠만이라는 인물의 성격 구현이다. 초반부의 의협심 많은 저돌적 성격의 허칠만은 결혼 후 현실 타협과 아울러 세속화되어 가는 인물로 바뀌었다가 종반에 이르면 다시 원래의 성격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바 성장하고 변화하는 캐릭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 마치 『상록수』의 채영신을 연상케 하는 아내의 헌신적인 일관성이 크게 작용했음은 소설적 결구의 미학으로 작용한다 할 것이다.

근대소설이 지향하는 리얼리티의 구현이라는 면에서도 이 작품은 탁월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현실의 반영이라는 리얼리티는 객관적인 현실의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고, 나아가 그것을 형상화하는 용기와 안목이 필수적이다. 이 작품에는 작가가 살고 있는 고향의 여러 지명과 심지어는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실존 인물로서의 문학인 이름도 여럿 나온다. 자칫 현실과 허구적 소설 세계를 혼동시킬 수도 있는 이런 설정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도 없지 않으나, 작가는 그것을 소설적 차원으로 훌륭하게 승화시키는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간간 보이는 농업 노동 현장의 모습 또한 리얼리티 구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작중인물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방언 또한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의 하나다. 이문구 선생의 구수한 충청 방언에서부터 젊은 작가 김종광의 톡톡 튀는 충청 방언의 구사가  우리 지역 문학의 한 특색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소설에서 방언의 사용은 인물의 성격 구현이나 작품의 분위기 형성에 크게 작용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충청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가 활동하는 작가와 계속 이 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완벽한 태안 지역 방언 구사는 그 어떤 작가도 따라갈 수 없는 이 작가만의 유리한 점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태안 방언의 소설화라는 연구 주제를 던져주는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소설의 재미는 그 제재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플롯의 전개에서 오는 게 훨씬 고급스럽고 차원이 높다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요인 중의 하나는 후반부에 사용된 추리 소설적 기법이다. 한미숙이 느닷없는 가출을 하고자 했을 때 허칠만이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원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은 독자에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소설적 재미의 요체를 터득한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원숙한 기법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이런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 작품은 태안이라는 지역의 동시대 현실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모자람이 없이 펼쳐지고 있다. 비록 루카치가 말하는 문제적 인물을 통한 현실의 총체적 반영이라는 이상적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소설적 재미를 통해 독자의 현재적 자아를 성찰하게 하고, 나아가 시대의 핵심적 문제의식의 각성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원초적 질문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소설이 지향해야 할 세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벽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이 작품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작가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고 보이는 허칠박(허칠만의 육촌형)이라는 작가의 모습에 나타나는 신비적 요소라든가 한미숙의 남편 몰래 습작하는 장면이 부부 사이에서도 비밀 유지가 지속되는 점, 마무리 부분의 약간 과장적인 감정 충일 등은 작품의 미학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 작품이 이룩한 성과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찮은 ‘옥의 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 시대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지역에서 헌신적으로 지역문학을 이끌고 있는 한 작가에 대해 우리들이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이자 보답이 아닐까 한다. *


독서 이야기  2011/10/06 13:31
http://blog.naver.com/dkkcho/139672146
[출처] 『향수』의 소설적 재미와 그 의미|작성자 조박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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