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의 의미와 구약시대 사람들의 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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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10-08 | 조회수491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우리는 육신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러면 육신이란 어떤 몸입니까?
영혼이란?
1) 육체가 아니면서 육체에 깃들어 인간의 활동을 지배하여,죽어서도 육체를 떠나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정신적 실체(實體).영가(靈駕).혼령(魂靈)
2) 가톨릭에서,불사불멸의 신령한 정신을 이르는 말.영신(靈神).준말:영(靈)
사도신경에도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라고 우리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 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입니다."(1코린15,12-14)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그들이 어떤 몸으로 되돌아 오는가?"
하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든 씨앗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그 씨앗에 몸체를 주십니다. 씨앗 하나하나에 고유한 몸체를 주시는 것입니다. 육체라고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가 다르고 집짐승의 육체가 다르고 날짐승의 육체가 다르고 물고기의 육체가 다릅니다. 하늘에 속한 몸체도 있고 땅에 속한 몸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몸체의 영광이 다르고 땅에 속한 몸체들의 광채가 다릅니다. 해의 광채가 다르고 별들의 광채가 다릅니다. 별들은 또 그 광채로 서로 구별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것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것으로 되살아 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15,35-49)
인간의 이성과 지성만으로는 부활의 신비를 온전히 알아듣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직 신앙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미사에 열성을 다하여 참례 함으로써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체험하시고, 늘 성경을 가까이 하여 묵상 생활에 열심을 다 하시면 어느 날 성령께서 명오를 열어 주시어 "아! 그거구나!" 라고 깨닫는 은총을 누리시리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군중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였다.(마태22,29-33)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질문하신 내용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의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려 애쓰다 돌아가신 분들(아브라함,이사악,야곱)이 죽지 않고 하느님과 함께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분께서는 죽은이들(이 세상에 살다 죽은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거부하며 살다 죽은 영적인 죽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루카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부자도 죽어 묻혔다.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루카17,22-24)
그리고 구약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하느님과 함께 살았기에 하느님께서 직접 하늘로 데려가신 첫 사람으로 에녹을 소개합니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창세 5,24)
그리고 엘리야 예언자도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에 실어 하늘로 들어 올리실 때였다.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2열왕2,1.11)
이상의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도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라고 하신 말씀의 이해를 잘 하셔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당신을 믿어서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이해하시면 충분히 다 이해하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 째째하신 분이십니까? 이 말씀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구약에서 받은 십계명을 세분화하여 613개의 율법조항을 만들어 지키게 하였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죄인으로 내몰았습니다. 사실 우리들 지금 십계명을 달달 외우기나 합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요, 이 말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 길은 너희를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면 구원에 이르른다."
보십시오. 어느 것이 쉽습니까?
613개 율법조항을 모두 외워서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쉬운 길을 알려 주심으로써 만민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다음은 "육신의 부활"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체가 그대로 부활하는가? 하고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을 통하여 깨달은 "육신의 부활"은 그것과는 다릅니다. 위에서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 소개해 드린바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그 씨앗(이 세상에서 살아낸 삶,영혼)에 몸체를 주십니다."(1코린15,38 참조) 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부활하여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태22,30 참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13,12)
지금 육체의 옷을 입고 있을 때에는 하느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어도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당시의 거울은 지금의 거울처럼 선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하느님의 얼굴을 어떻게 마주 보겠습니까?
하느님의 존재하시는 방식과 비슷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의 육신은 그러한 존재방식,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사와 같아지는 방식이라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는 이 부활을 지금 여기에서 누리며 맛보도록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3-4)
이 새로운 삶이 바로 이 세상에서 누리는 부활의 삶의 체험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원죄와 본 죄를 사함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계를 가진 육의 몸을 여전히 지니고 살아가기에 악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기도 쉬운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는 교회(성사들)를 통여 지속적으로 부활의 기회를 주십니다. 또한 일상의 삶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살아내려 애쓰는 과정을 통하여도 부활의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아니 매일 자고 일어나는 그것을 통해서도 부활의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살아내어 주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도 부활의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이것이 부활이구나를 어렴풋이 알며 살다가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주님을 만나는 그날 온전히 알수 있는 것이 부활이지요.
여기에서 부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이웃을 원수로 여기며 살던 사람을 천국에 데리고 간다고 해도 그는 천국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는 천국에서도 이 세상에서 살던 방식을 그대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이 육체는 땅에 묻혀 썩어 없어지지만 내가 살아온 나의 인생(영혼)은 주님께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그날 주님께서 "내가 다 안다" 하시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잘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세례 때에 원죄와 본죄를 사함 받았으니 이제는 자신의 삶을 잘 성찰하고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례함으로써 성사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립시다.
아멘.
사실 저도 여기까지 알아 듣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하고 더 잘 알아 들으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애쓰는 만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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