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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통고의 칼 아이리스, 성모님의 포도주잔 서양메꽃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5 조회수7,623 추천수0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통고의 칼 ‘아이리스’, 성모님의 포도주잔 ‘서양메꽃’

 

 

- 아이리스.

 

 

아이리스, 백합 못지않은 성모님의 상징

 

꽃봉오리가 마치 먹물을 머금은 붓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 땅에서는 ‘붓꽃’이라 불리는 식물. 그 종류가 꽤나 많은데, 그 다양한 것들을 통틀어서 서양에서는 아이리스(Iris)라고 부른다(여기서는 ‘아이리스’라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식물을 두고 더러는 창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단옷날 머리를 감는 데 쓰던 창포와는 모양이 비슷하기는 해도 전혀 다른 식물이다. 아이리스는 북반구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그리스 신화에 이리스라는 여신이 나온다. 이리스는 이름의 뜻(그리스어 iris는 ‘무지개’를 뜻하며,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가교로 여겨졌다) 그대로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 역할, 주로 헤라 여신의 시종 역할을 했다. 그런데 제우스신이 아리따운 이리스를 쫓아다니며 추근거렸다. 그러자 이리스는 제우스의 구애(求愛)에서도 벗어나고 헤라에 대한 신의도 지키기 위해서 무지개를 타고 이 세상에 내려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아이리스 꽃이다.

 

유럽에는 아이리스와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민족들의 이동과 그로 인한 전쟁이 한창이던 때, 오늘날 독일의 쾰른 근처 라인 강에서 프랑크 왕국 클로비스 1세의 군대가 고트 족의 공세에 속절없이 밀렸다. 마침 클로비스 왕은 강 복판에 아이리스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물이 깊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강을 건너서 퇴각했고, 전멸할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 뒤 아이리스 문양은 프랑크 왕국(나중에는 프랑스)을 상징하는 문장[國章]에 자리 잡았다. 이 문양을 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is)라고 한다. 그리고 프랑크 왕국에서는 새 왕이 즉위할 때 왕홀(王笏) 대신 아이리스 꽃을 손에 든 왕을 방패에 태워서 들어 올리는 관행이 생겨났다.

 

- 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is).

 

 

이탈리아에도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온다. 아이리스라는 미인이 있었다. 마음씨 착하고 성품이 고결한 아이리스는 로마의 왕자와 결혼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왕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홀로 된 아이리스에게 청혼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는 거들떠보지 않고 푸른 하늘만 그리워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길에서 젊은 화가를 만났다. 화가는 아이리스를 사랑하게 되었고, 열정적인 청혼에 감동한 아이리스는 한 꽃을 가리키며 ‘살아 있는 것처럼 똑같이’ 그려 달라고 했다. 화가는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본 아이리스는 아름다운 꽃의 자태에 감동했다. 하지만 그림 속의 꽃에 향기가 없다며 실망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그림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꽃에 입을 맞췄다. 그 순간, 아이리스도 감격하여 화가에게 입을 맞췄다. 그때부터 하늘색 아이리스 꽃은 그들이 나눈 첫 입맞춤의 향기를 간직하게 되었고, 꽃이 필 때면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은 아이리스라는 식물의 꽃과 관련해서 생겨난 것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아이리스의 꽃보다는 그 잎의 생김새를 눈여겨보았다.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잎을 보면서 긴 칼을 연상했고, 나아가 아드님의 수난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시며 고통스러워하셨을 성모님을, 칼에 꿰찔리신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리스의 한 종류인 저먼 아이리스(German Iris; 학명 lris germanica)에는 아예 ‘성모 통고의 칼’(Mary’s Sword of Sorrow)’ 또는 ‘긴 칼 나리꽃(sword lily)’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이리스뿐 아니라 잎이 긴 칼을 연상시키는 다른 식물, 이를테면 글라디올러스도 또한 ‘긴 칼 나리꽃(sword lily)’이라고 불렸다.

 

한편, 앞에서 말한 플뢰르 드 리스는 프랑스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중세 때부터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그 기본 도안이 아이리스가 아닌 백합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서양메꽃, 성모님의 작은 포도주잔

 

혹시 고구마 꽃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 꽃의 모양이며 색깔을 본 순간 아마도 그와 똑같이 생긴 다른 꽃 하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나팔꽃처럼 생긴 분홍색 꽃, 그것은 메꽃이다. 수삼 년 전에야 고구마 또한 메꽃과의 식물이라는 걸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꽃의 모양이 낯설지 않아서 친숙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메꽃, 이 이름을 달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식물이 이 땅에도 6가지나 된다(메꽃, 큰메꽃, 선메꽃, 애기메꽃, 갯메꽃, 서양메꽃).

 

- 서양메꽃.

 

 

그중의 하나, 서양메꽃(Field bindweed; 학명 Convolvulus arvensis)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토종식물이 아니라 1980년에 처음으로 채집되어 이름을 올린 귀화식물이다. 유럽 원산의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인데, 땅 위를 기는 외줄기 덩굴로(더러는 가지를 치기도 함) 길이 1~2m 정도까지 자라고, 7~8월에 깔때기 모양의 통꽃을 피운다. 꽃의 크기는 지름 3㎝ 정도로 우리가 흔히 아는 메꽃보다 조금 작은 편이고, 꽃의 색깔은 흰색 또는 분홍색이다. 메꽃이 이 땅에서 잡초 취급을 받은 것처럼, 서양메꽃도 꽃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일단 뿌리를 내리면 빠른 속도로 자라며 주변의 다른 식물들의 생육에 지장을 주는 까닭에 원산지에서 잡초로 간주되던 식물이다.

 

그런데 서양메꽃에는 성모님과 관련된 사연이 서려 있는 다른 이름이 있다. 그림(Grimm) 형제가 우리에게 들려준 동화들 중의 짤막한 이야기 하나가 그 이름을 알려 준다.

 

옛날, 마부 한 사람이 포도주를 잔뜩 실은 수레를 급히 몰고 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수레가 움직이지 않았다. 곤경에 빠진 마부는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마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시던 성모님이 그 장면을 보셨다. 마부의 딱한 사정을 들으신 성모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 시간을 걸어오다 보니 지치고 목이 마르군요. 내게 포도주 한 잔 주겠어요. 그러면 마차가 움직이게 해 줄 수 있는데요.” 마부가 대답했다. “당연히 드려야지요. 드리고말고요. 그런데 잔이 없어서 어쩐다지요?”

 

성모님은 길가에 피어 있던 작은 꽃 한 송이를 따서 마부에게 건넸다. 빨간 줄무늬가 있는 흰색 꽃이었다. 포도주잔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꽃, 바로 서양메꽃이었다. 마부는 그 잔에다 포도주를 가득 부어서 성모님께 드렸고, 성모님은 그것을 받아 드셨다. 그러자 그때까지 꼼짝달싹도 하지 않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작은 꽃은 지금(그림 형제가 동화를 쓴 때인 19세기 중엽)도 ‘성모님의 작은 포도주잔’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7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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