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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 나는 참 행복하다.” - 10.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8 조회수389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1.10.8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요엘4,12-21 루카11,27-28

 

 

 

“아, 나는 참 행복하다.”

 

 

“아, 나는 참 행복하다.”

오늘 새벽 가슴 활짝 열어 별빛 찬란한 푸른 밤하늘을 품에 안을 때

저절로 솟아난 고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이렇게 고백할 때 참 행복한 삶이 됩니다.

수도원 정문 옆 공터에 쓰레기를 소리 없이 내다버리는 사람이 있어

한 수도형제가 나무판에 글씨를 새겨 담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양심을 버리지 마시오.”

원래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수도원이 세상에 주는 하느님의 메시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양심대로, 하느님의 뜻대로 살 때 참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짧은 인생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 지 못할 이유도 없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지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똑같은 얼굴 없듯이 생각도 마음도 능력도 천차만별입니다.

사람의 신비는 그대로 하느님의 신비에 직결됨을 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그러나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참 행복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고 살 능력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난 복된 인간의 운명입니다.

하느님은 행복의 샘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참 행복도 없습니다.

 

 

“주님, 당신은 나의 행복이십니다.”

“주님, 당신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당신 밖에 이 몸 둘 곳 없습니다.”

 

모두 하느님이 우리의 참 행복이라는 시편 저자의 고백입니다.

오늘은 ‘참 행복’에 대한 묵상을 나누기에 앞서

몇 가지 예화를 인용합니다.

 

 

“원판불변의 법칙입니다.

 사람은 바꾸지 않습니다.

 타고난 천성이 천품이 천부의 능력이 중요합니다.”

 

 

살아갈수록 공감하는 어느 수녀님의 말씀에 다른 수녀님이 첨언했습니다.

 

 

“원판을 예쁘게 봐 주야 합니다.

  사람 눈에 이런 저런 좋고 나쁨의 모습이지

  하느님 눈에는 다 예쁜 모습의 원판일 것입니다.”

 

천성을, 천품을, 천부의 능력을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좋은 천품에 천성을 태어나고도 하느님을 몰라 불행한 사람들 많습니다.

참 행복은 좋은 천성이나 천품이기 보다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닮아 모두를 예쁘게 볼 때 참 행복입니다.

꽃마다 그릇마다 그 모양, 크기, 색깔, 용도가 다 다르듯

사람도 다 다릅니다.

그러니 이 원판을 바꾸려는 시도는 애당초 불가능한 무지의 폭력입니다.

모두를 하느님이 만드신 그 원판대로 인정하고 받아드릴 때

평화요 행복입니다.

또 수녀님의 재미있는 말이 이어집니다.

 

 

“그 수녀님들은 너무 쓸 데 없이 분주해요.

  하느님이 일할 실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아요.”

 

분별의 지혜에 해당된 경우입니다만 할 수 없습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뿐이 없는 게 사람입니다.

매사 하느님이 일하실 여지를 남겨놓을 때 참 행복입니다.

어제 수도원을 방문한 한 수도형제와 대화 중

한 마디에 귀가 번쩍 열렸습니다.

참 정석대로 깐깐하게 살아 온 수도형제였습니다.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무리하지 않고 순리대로 이웃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니

나도 편하고 이웃도 편해 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바로 순리대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참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청력이 약해져 작게 이야기하는 걸 잘 듣지 못합니다.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노력해도 듣지 못합니다.

그 순간의 깨달음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아, 이해력도 기억력도 인내력도 그러하겠구나.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기억하려해도 인내하려 해도

  그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겠다.

  영적인 경우도 보이지 않는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듣지 못할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런 부단한 깨달음이 하느님의 자비심을 닮게 하여

참 행복에 이르게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심을 닮아갈수록 인내, 이해, 수용, 배려, 존중,

공감의 능력도 깊어져 이와 함께 참 행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참 행복에 대한 정의가 고맙습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참 행복입니다.

언젠가 그날에 누릴 참 행복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누려야 할 참 행복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가까이 있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을 못살면 앞으로도 못 삽니다.

예수님 같은 아들을 둔 어머니가 행복하겠다는

부러움 가득 담긴 어느 여자에 대한 주님의 명쾌한 답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물론 내 어머니 마리아도 행복하겠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참 행복의 기회입니다.

바로 이 참 행복을 살았던 이들이 예언자들이고 오늘 1독서의 요엘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때 참 행복입니다.

 

지금 여기서 죽음 넘어 생명을, 절망 넘어 희망을, 어둠 넘어 빛을,

심판 넘어 구원을 삽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절망의 짙은 구름 넘어 찬란한 태양의 행복을 살았던

요엘 예언자였습니다.

어둠 속에 빛을 발하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새가 되어 주신다.”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에게 활짝 열리는 비전이요,

피난처이자 요새 이신 하느님 안에서 이 비전을 살아감으로

참 행복했던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시온에 머무른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시온 같은 이들 안에 주님께서 머무르니

저절로 참 행복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 안에 머무르는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주님은 당신 말씀을 경청하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은총을 주심으로

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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