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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의 축제 - 10.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9 조회수37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10.9 연중 제28주일

이사25,6-10ㄱ 필리4,12-14.19-20 마태22,1-14

 

 

삶의 축제

 

삶은 축제이자 잔치입니다.

한 번 뿐이 없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해의 허무한 삶이 아니라

축제의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동시에 기도의 계절이고 축제의 계절입니다.

조금씩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들이

바야흐로 가을 축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얼마 전 잠시 틈을 내어 불암산에 오르던 중,

온통 눈길이 가는 것은 주변의 음식점들뿐이었습니다.

문득 ‘아, 먹는 일이 정말 큰일이구나. 먹자고 하는 일인가.

사실 먹는 재미없으면 무슨 재미로, 맛으로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나라 잔치의 맛으로,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하여 하늘나라 잔치의 예표와도 같은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오늘은 ‘삶의 축제’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삶은 하늘나라 잔치입니다.

 

우리 삶은 고해가 아니라 잔치요 축제입니다.

단조로운 반복의 따분한 일상이 아니라

매일 설렘으로 새롭게 열리는 새 하늘, 새 땅의 하늘나라 잔치의 날입니다.

 

하여 매일 하느님의 노래방 성전에서

흥겹게 찬미와 감사로 축제의 삶을 노래하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우리가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축제의 삶을 노래하라 주어진 목소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밝고 환한 얼굴로 축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성인들은 어떤 역경 중에도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늘나라 잔치의 비전은 보고 묵상하라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보고 지금 여기서 살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이사야가 역경 중에도 빛나는 희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하늘나라 비전 덕분이었음을 봅니다.

이 하늘나라 비전을 몸소 지금 여기서 살아 낸 이사야 예언자였습니다.

 

언젠가 죽어가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된 하늘나라의 잔치요 축제입니다.

이사야 하늘나라 잔치의 비전이 참 고무적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바로 이 거룩한 미사 축제가 하늘나라 축제를 앞당겨 체험케 하며

우리의 온 삶을 축제로 변화시킵니다.

축제의 중심에 찬미의 노래와 더불어

말씀과 성체의 음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 비전을 오늘 지금 여기 땅에서 현실화하는 미사은총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산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버리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이 산위에서’를 ‘이 미사 안에서’로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하늘나라 잔치의 비전이 은혜로운 미사잔치를 통해 그대로 실현됩니다.

우리에게 씌워진 환상의 너울을, 탐욕의 덮개를 없애시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버리시며,

수치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우리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 삶을 더욱 역동적이 되게 하고 희망차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하늘나라 잔치의 주인이십니다.

 

 

주인 없는 잔치는 없습니다.

누가 주인인 줄 모르고 잔치에 참여했다면

그 잔치를 진정 맛 볼 수 없습니다.

잔치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잔치의 기쁨도, 재미도, 맛도 커집니다.

 

하여 잔치의 맛을, 기쁨을 맘껏 누리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하늘나라 혼인잔치 비유에서

손님들을 초대한 임금이 상징하는바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주인이신 하느님은 손님들의 거절과 냉대에도 좌절함이 없이

끊임없이 이들을 초대하십니다.

만일 이들이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았더라면

만사 제쳐놓고 초대에 응했을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가 불행의 근원임을 깨닫습니다.

축제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우리 모두 하늘나라 잔치에 참석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이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아갈수록 삶의 잔치의 맛도 더욱 깊어집니다.

오늘 이사야서에서

축제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만난 이들의 감격에 벅찬 고백입니다.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바로 미사를 통해 주님을 만난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희망, 우리의 기쁨입니다.

잔치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만남이 바로 구원이요

이런 구원체험에서 샘솟는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 받은 손님들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입니다.

우리를 초대하여 환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는 주님의 구원의 문, 환대의 문이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늘나라 잔치의 초대장입니다.

세례 받았다는 자체가 바로 초대장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어리석은 사람들 구원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아예 주님의 초대를 거부했고, 세상일에 빠져 초대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계속되는 현실입니다.

 

주님의 초대를 받았다고 다 구원이 아닙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습니다.

 

세례 받았다고, 성당 열심히 다녔다고 다 구원이 아닙니다.

초대 받은 손님에 걸맞은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오늘 복음에서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아 혼인잔치에서 쫓겨난 이의 일화가

우리에겐 좋은 교훈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하늘나라 잔치에 걸맞은 예복을 입고

이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감이 최고의 예복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예복,

사랑과 정의의 예복,

기쁨과 평화의 예복,

온유와 겸손의 예복입니다.

바로 이게 하늘나라 잔치 미사에 걸맞은 예복입니다.

 

바오로의 사도의 삶의 예복이 참 좋습니다.

하늘나라의 비전을 살 때 저절로 갖춰지는 이런 삶의 예복입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각박한 삶의 현실 안에서도

자기초월의 하늘나라 예복을 입고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대자유인

사도 바오로입니다.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삶은 하늘나라 잔치이자 축제입니다.

 

 

하느님은 하늘나라 잔치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게 우리 삶의 정의이자 신원이기도 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하늘나라 미사잔치에 초대받아

하늘나라 잔치의 주인이신 주님을 모시고

친교의 기쁨을 나누는 복된 시간입니다.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하늘나라 미사축제에 참석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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