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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1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11 조회수32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10월 11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37-4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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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예전부터 사람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현재의 우리들은 아무래도 겉이 중요하다는 것에 솔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속이야 늘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고 대신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겉모습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대입니다.

결국 그 겉모습이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모든 것이 좋게 해석되는 세상까지 되었으니 말입니다. 힘 있고, 유명한 사람이 하는 것은 그의 마음까지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힘이나 능력만으로 정당화 되고 마는 불균형이 세상의 질서처럼 되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복음 속에 예수님은 바리사이의 초대를 받으십니다. 한차례 가르침을 베푸신 터라 이 때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나 그보다 높은 스승으로 대접을 한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고 식사에 앞서 손을 씻지 않으시면서 당신의 격을 스스로 떨어뜨려 버리십니다. 사람들이 지키는 아주 기본적인 질서조차 무시하고 그냥 식사를 하시려는 예수님은 초대한 바리사이의 품위도 떨어뜨리시고 모욕하신 셈이 됩니다.

바리사이의 겉에 때를 묻히신 셈입니다. 바리사이의 사람보는 눈마저도 떨어뜨리신 예수님의 행동에 스승으로 예수님을 존중하고 초대한 바리사이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바리사이에게 예수님의 두 번째 가르침이 주어집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탄하고 그분을 모셔들여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한 자락을 같이 했다는 인연을 만드는 것이 바리사이의 초대에 함께 담긴 사회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초대에 응하시되 바리사이가 바라는 그 관계를 스스로 끊어내신 이유는 바리사이에게 정말 필요한 가치는 좋고 높은 것을 자신 안에 채우고 갖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십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상. 그런데 그 하느님에 다가갈수록 사람들 위에 고결하게 빛나고 그 가치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결국 그렇고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겉모습이 하느님에 어울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시간 자신은 속마음이 하느님으로 가득하다 생각하고 있기에 그 마음에 어울리는 노력이라고 생각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에서 만난 하느님의 가치입니다. 그런 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집에 초대한 것은 그 길바닥에서 만난 가치를 집에 들여 정성을 다해 대접하여 고결한 바리사이의 집에 가치를 드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그는 그 길에서 하느님께로 한 없이 올라 서려 노력하며 스스로 떠나온 사람인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씻지 않으신 손에는 그 길에서 묻은 먼지가 가득합니다. 바리사이는 묻히고 싶지도 함께 하고 싶지도 않은 가치가 바로 예수님이 씻으셔야 할 가치였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이 왜 그런 곳에서 사시고 말씀하시는지 그분의 숨겨진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의 마음에 담긴 고결한 욕심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먼지 하나 묻히려 하지 않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사람이 쌓아놓은 하느님 앞에서의 편견과 잘못된 질서를 가장 밑에서 무너뜨리기 시작하시는 예수님은 바리사이가 한 행동이 그의 겉모습에 더한 화려함을 주는 행동이 아니라 그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임을 말씀해주십니다. 길에서 만난 예수님을 모시고서는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 예수님의 행동 앞에서 당황하는 바리사이는 주님이 자신에 맞춰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 사람을 가려 대하는 그의 원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손에 묻은 먼지를 털지 않으시고 오히려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씻어야 할 것은 예수님 손에 묻은 먼지가 아니라 그의 마음 속의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길에서 만난 가치에서 하느님을 느꼈다면 그 길에 나설 수 있어야합니다. 그 가치를 내 입에 담는다고 해서 나에게 더 좋은 영성이 쌓이고 덕이 올라갔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길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고결한 가치는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그 모든 가치와 함께 하는 것이지 그 모든 것을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홀로 그 모든 것을 싸워 이긴듯한 독한 모습으로 올라서서 하느님께 미소를 드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평범한 순간에는 하느님이 만드시고 원하시는 모든 진리가 드러나 있습니다. 마치 길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하느님을 느낀 바리사이의 경험처럼 말입니다.

세상에서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통해 하느님의 이미지를 겉모습으로 쌓아올린 우리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은 늘 한결같고 좋다고 말하면서 어쩔 수 없는 탑을 쌓으면서 그것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결국 그 마음 안에 자리한 욕심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손을 씻을 생각을 갖지 않는 예수님을 성당에 모셔드릴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너무 깨끗하고 너무 고결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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