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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13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13 조회수335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0월 13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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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자존심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지금껏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충격적인 표현 하나로 정리해내십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정작 하느님의 뜻은 지키지 않는 이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죽임으로서 현실에서 가장 편안한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이 잘못된 사람 하나만이 아니라 대를 이어 그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하십니다.

자신이 살 때 전해진 하느님의 정의를 죽이고서는 삶의 자유로움을 얻고 그 이기적인 살인을 아름다운 무덤으로 장식하고, 자신의 후손을 통해 하느님 예언자라는 호칭을 주고 기억하게 하여 있지도 않은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 사는 사람들. 그 과정을 통해 잘못된 삶을 아무도 지적하거나 고쳐줄 수 없는 높은 자리에서 누리며 사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오직 그들의 잘못을 고치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예언자들이니 그들을 죽이면 그들은 하느님이 정해주신 절대 권력을 지닌 것처럼 편히 스승의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뒷처리를 아름답게만 하면 될 일이고 그 자식들에게 그 몫을 넘기고 대신 그 권력으로 보상하는 악순환이 계속 된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런 못된 관행과 잘못된 역사를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그 모든 잘못의 책임을 예수님이 계시는 시대, 바로 그 자리에서 지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 책임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이 내용은 결국 예수님의 운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언자들을 죽임으로서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워왔습니다. 또한 그 예언자들의 죽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은 자신들만이 지키고 가르치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예언자들의 아름다운 무덤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섬기는지 보여주는 증거로 삼는 치밀함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예언자들은 그리 소리 없이 죽임을 당하고 하느님의 말씀대신 무덤으로 하느님을 설명하는 이기적인 도구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숱하게 죽어간 예언자들의 끝에 찾아온 하느님이 아들이시고 완전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에게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의 시작이며 완성인 분이시고 그동안 전해져 온 수많은 하느님의 말씀 자체 이신 분입니다. 그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신 분이시며 그들이 입으로 전한 모든 말씀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예언자들이 죽었고 그들의 무덤만이 남았으나 그들의 죽음의 진실은 철저히 감추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이 달랐습니다. 지도자들을 찾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백성들 사이에 오셨고, 그 백성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죽을 때까지 그 가르침으로만 살던 이들에게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전하셨고 지도자들은 그분이 모든 이에게 하시는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가르침과 지시가 아닌 모든 이에게 지도자들의 독선과 이기심에 잘못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바로 잡고 대신 잘못된 이들의 거짓과 잘못을 드러내십니다.


예언의 방법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상도 못하는 방법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에게 전에 없던 방법으로 죽음을 안겨드립니다. 지도자를 통해 세상을 깨우치지 않으시고 백성에게 직접 오셔서 당신을 전하시는 예수님이셨기에 지도자들은 이 한 사람의 죄를 드러내려고 골몰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그리고 몰래가 아닌 공개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그동안 감추어졌던 그들의 잔악함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줄도 모르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던 그 평범함을 이용해서 본보기로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잘못을 찾으려 애를 씁니다. 전에 같으면 죽여놓고 덮으려 했으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평범한 분이셨고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을 이분의 죽음으로 다시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십자가"였습니다. 숨겨서 죽이고 아름다운 무덤으로 꾸몄던 그들의 방법은 십자가로 드러내놓고 죽이고, 빈 무덤을 통해 하느님을 죽였음을 들켜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에 드러나고 내용은 없이 하느님을 이용했던 이들의 잘못 또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이용했던 이들의 잘못은 결국 백성들이 잘못 전해진 하느님을 알고 섬기며 평생 죄인인듯 살아가는 비극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하느님을 전하는 이들은 편하게 살았고 하느님을 배운 이들은 사랑이신 하느님 앞에 죄인처럼 살고 아픔이 없는 아름다운 천국을 만드신 하느님을 세상에서 가장 엄하고 무서운 분으로 여기며 살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무조건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예언자들이 죽은 것처럼 여기고 지도자의 죄를 대신 속죄하며 그 예언자의 죽음을 기억하는 어처구니 없는 삶을 계속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결국 하늘나라를 이야기하지만 꿈도 꾸지 못하는 불가능한 곳으로 여기며 평생을 살았고 그 하늘 나라를 가르치는 이들은 사실 그 나라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통해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이용하던 이들의 역사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아름다운 무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대신 예수님의 죽음을 늘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리에 선 이들은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같은 유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언제든 가능한 일이며 여전히 누구도 지적할 수 없는 권위의 자리에서 하느님 말씀과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사의 은총을 지니고 살아야 하기에 이 선택은 자신의 판단과 마음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잘못된 판단이 시작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또 다시 눈 앞에 펼쳐지는 하느님의 진실을 덮고 자신의 행복을 찾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혹시나 그 유혹이 올 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언자들을 죽이고 서로 덮어주며 자신들을 지켰던 역사의 자리는 여전히 권위의 발 밑에 있지만 하느님은 이제 소리 없이 주어갈 예언자 대신에 당신이 죽어버리시며 모든 것을 드러내신 십자가로 우리 곁에 계시고 이미 백성들이 그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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