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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울은 잘 생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15 조회수586 추천수2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컸다. 하루는 사울의 아버지 키스의 암나귀들이 없어졌다. 그래서 키스는 아들 사울에게 말하였다. '종을 하나 데리고 나가 암나귀들을 찿아보아라.'"
(1사무9,2-3)
 
어느 날 사울에 대한 묵상을 하다가 주님께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주님, 다 아시면서 처음부터 사울을 왜 왕으로 뽑으셨어요?"
"그럼 내가 너를 뽑은 것도 문제냐?" 하시는 것입니다.
"그건 아니고요..."
아하~! 뭔가를 알겠더군요.
이후에 지금까지의 묵상과 다른 방향으로 사울 왕의 문제점과 저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위 본문에서 말해 주듯이 사울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키도 컸다면 일단 외형상 조건은 아주 이상적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외형상은 완벽하지만 내면상 어떤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부분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의 약점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리고 다윗과 사울을 비교해 가며 묵상하면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이해도 쉬워졌습니다.
 
다윗은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1사무16,12)
볼이 불그레하다는 것은 '생기'가 넘친다는 표현으로 들립니다. 몸의 어느 곳도 막힌 곳이 없으므로 순환이 순조롭기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은 아닐런지요. 그리고 다윗은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라고 합니다. 눈매가 아름답다는 것은 아름다운 그 눈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가졌다는 표현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본래 아름답기에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아이가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이제부터의 다윗이 살아가며 보여 줄 삶이 어떠할 것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완벽한 외형상의 조건에도 무엇이 부족한 사람이었나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없어진 암나귀들를 찿으러 나선 사람입니다.
저는 여기서 '없어진 암나귀들'에 대해서 먼저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신 것이 어린 나귀였습니다. '평화의 임금'이신 분께서 타신 나귀이므로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기도 하겠지요. 당시의 임금들은 전쟁시에는 말을 타고 평화시에는 나귀를 탔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아버지의 없어진 평화를 찿아 나선 사람이라는 뜻인데 과연 그는 찿을 수 있을까요? 사울은 '종'을 하나 데리고 찿아 나섭니다. 그러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지만 찿지 못하였고, 거기에도 없었고, 역시 찿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찿지 못하고, 거기에도 없고, 역시 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는 주님께 머물 때만 가능한 것이지 인간이 찿아나선다고 찿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울이 고백합니다. "그만 돌아가자. 아버지께서 암나귀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걱정하시겠다."(1사무9,5)
그렇습니다. 평화의 주인이신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사울이 제 정신이 들었을 때 그의 종이 "이 성읍에는 하느님의 사람이 한 분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존경받는 분이신데, 하시는 말씀마다 모두 들어맞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거기에 한번 가 봅시다. 혹시 그분이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일러 주실 지도 모릅니다."(1사무9,6) 라고 말하자 그의 의견을 따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을 만나게 되고, "당신이 사흘 전에 잃어버린 암나귀들은 이미 찿았으니, 더 이상 그 일로 마음을 쓰지 마시오."라는 소식을 듣게 되며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보십시오!
사람이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누가 찿아 주십니까?
 
다음은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서 그대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람이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사울의 고백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사울이 대답하였다."그렇지만 저는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에서도 가장 작은 벤야민 지파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고 저의 가문은 벤야민 지파의 씨족 가운데에서도 가장 보잘것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1사무9,11)
어떻게 보면 아주 겸손한 사양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고 있는 사울의 내면의 세계가 이렇게 아주 작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사울은 잘생긴 젊은이인데다 이스라엘에서 그보다 키가 큰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그는 자신이 지닌 조건에 충분히 감사하고 만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감사하고 만족함을 누렸다면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멋진 사나이로 자신을 고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속한 벤야민 지파와 자신의 가문이 가장 보잘것 없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본문에서는 사울이 임금으로 뽑히는 과정에서 "짐짝 사이에 숨어 있었다"(1사무10,22)는 사실도 있습니다. 짐짝 사이에 숨어 있던 그의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컸으며 온 백성 가운데 이만 한 인물은 없소라는 칭찬을 듣고 왕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이후 그가 보여준 삶의 길은 그의 겉모습에 걸맞는 삶이 아니라 그의 속 마음 그대로 살아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묵상해 보면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께서도 사울의 이 고백을 받아 들이시어 그가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려 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 주셨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면서 왜 그를 뽑으셨냐고 제가 질문을 드렸을 때에 깨달은 것은, "그 모든 것을 다 알았기에 내가 그에게 많은 협조자를 붙여주지 않았느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울에게는 그를 곁에서 잘 협조해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먼저 그가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찿아 나설 때에 '종"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 종이 사무엘에게 가보자고 안내 했으며, 사울이 그 하느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하나도 없다고 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 종의 권유를 받아 들였기에 그는 사무엘을 만나는 기회를 얻었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돕는 협조자로 그의 아들 요나탄을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다윗을 향해 나쁜 마음을 먹었을 때 얼마나 도와주었습니까?
그리고 다윗도 그의 협조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정신적으로 병들었을 때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영이 사울에게 내릴 때마다, 다윗은 비파를 손에 들고 탔다. 그러면 악령이 물러가고, 사울은 회복되어 편안해졌다."(1사무16,23)
 
이처럼 사울은 겉 모습은 이스라엘에서 그보다 훌륭한 사람이 없었지만 속 사람이 부족함을 잘 아신 주님께서 그를 도와줄 협조자를 붙여 주시며 이스라엘을 잘 돌보라고 그에게 맡기셨으나 그는 주님께서 붙여주신 협조자들을 무시하고 오히려 경쟁자로 생각한 결과로 자신의 인생은 물론 그 협조자들도 괴롭힘을 당하는 삶을 살게 하며 살다가 생을 마감한 불쌍한 사람임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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