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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15 조회수541 추천수8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연중 제 29주일 -지배할 것인가,지배당할 것인가?

 


 

저는 요즘에서야 짬나는 대로 대장금을 보고 있습니다. 아직 초반부인데 금영이의 심리변화가 재미있습니다. 금영이는 본래 나쁜 사람이 아니었는데 최상궁과 그 집안의 한 일원으로서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지만 장금이에 대한 미움과 또 그 집안 분위기에 결국 지배당하고 자신 스스로도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기로 결심합니다.

사람은 본래 자신이 속해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행하는 것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게 창조 되었고 그렇게 그런 상황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단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지하철 한 칸 내부의 사진인데 희뿌연 연기가 가득 차 있어 사람을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연기가 자욱하게 새어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모두 다소곳이 앉아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어 모두 질식하여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도대체 그 많은 연기가 들어오는데도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는지 알아내기 위해 EBS 지하 1층 빈 공간에서 5명의 학생을 상대로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문제를 풀게하고 담당자는 10분 후에 들어온다며 방을 나갑니다. 그리고 밖에서 문 밑으로 뿌연 연기를 학생들이 있는 방 안으로 주입합니다.

정말 놀랍게도 방이 연기에 가득 차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는데도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화재경보기를 울리니 그 때서야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 몇 번의 실험 반복했지만 다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위급한 상황에서도 대처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들 가만히 있기에 저도 가만히 있었어요."

"혼자 나서기가 눈치가 보여서"

"솔직히 말해서 다 안 움직이니까"

그러나 한 명만 방에 두고 문제를 풀게 하고 같은 실험을 했을 때 그 학생은 단 18초 만에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이것이 대구 지하철 참사가 그렇게 커질 수 있었던 원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따르려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거스르기 힘든 상황의 힘입니다. 이 대다수의 거스르기 힘든 힘을 심리학에선 ‘상황의 힘’이라 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다수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그 상황의 힘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실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1963년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했던 실험입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목격한 그는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해 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가 심리학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충격적인 실험을 하게 됩니다.

기억에 관한 연구를 한다고 속이고 사람들을 모집한 후 수고비를 미리 지급하고 학생이 질문의 답을 틀릴 때마다 치명적인 전기충격을 가하라고 명령합니다. 흰 옷을 입은 두 명의 사람이 그 뒤에서 버튼을 제대로 누르나 감시합니다. 한 문제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의 강도가 높아지고 어느 수준이 되면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정도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물론 누르는 사람도 학생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버튼을 누를 때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물론 학생은 일부러 답을 틀리게 말하고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수준까지 버튼을 누르는 처지가 되게 만듭니다. 강압은 없지만 이미 돈도 받았고 주위에 사람들도 근엄한 얼굴로 실험을 바라보고 있어서 분위기는 제법 심각하게 돌아갑니다.

그냥 돈을 다시 주고 이것은 못할 일이라며 뛰쳐나오면 그만인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 분위기에 눌려서 65%나 되는 사람들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 이상의 전기충격 버튼을 눌렀습니다. 자신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분위기를 깰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심리를 보면 어째서 나치의 군인들이 자신들의 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태인들을 학살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마귀는 이 상황의 힘을 매우 잘 이용합니다.

 

오늘 바리사이들도 예수님께 똑같은 방법을 사용합니다. 먼저 예수님을 유다인 중의 한 명으로 만들기 위해 칭찬을 늘어놓습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덫을 놓습니다.

“그러니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쉽게 말해 일본 지배하에 있을 때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과 몰려가서 한 한국 사람을 매우 치켜세운 다음 일본에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세금을 바치라고도 바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두 상황의 힘이 교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상황의 힘에 지배당하는 분이셨다면, 당신이 요한 세례자의 권위가 하늘에서 오는지 사람에게서 오는지 물었을 때 꿀 먹은 벙어리들이 되어버렸던 유대 지도자들처럼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도 하고 만족시키지 않기도 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로마를 만족시키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않고, 또 하느님 것을 하느님께 돌리라며 로마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족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진정 사람들의 시선에 좌지우지되지 않으시고 참된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모든 사람들을 거슬러 무겁게 짓누르는 상황의 힘을 언제나 이기시는 분이셨습니다.

 

5천명을 먹이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추대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영예는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들은 열두 사도를 제외하고는 다 떠나가서 더 이상 예수님을 따라다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 당신의 영예를 추구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기에 수많은 사람의 기대를 단칼에 저버리실 수 있는 용기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기에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그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지배당하고 있던 상황의 힘을 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신 것은 “내가 나를 누르려 했던 상황의 힘을 이겨냈다.”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대답 안에는 어떻게 마귀가 조정하는 이 상황의 힘을 이기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지가 들어있습니다.

즉 세상의 영예는 세상에 내려놓고 오직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자세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축구선수 박주영도 그 종교가 무엇이든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골 넣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는 줄 알면서도 항상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당 내에서도 상황의 힘이 작용합니다. 대다수의 신자들이 행하는 것들이 그 힘입니다. 성당에선 중고등부 학생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학원에 보내기 때문에 나 혼자 아이들을 성당 내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도 상황의 힘에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또는 대부분이 십일조를 하지 않기에 나 혼자 십일조를 하면 괜히 혼자 바보가 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먼저 대부분의 신앙인들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 상황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지하철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다 죽은 이수현 학생 때문에 그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누구 하나가 이 상황의 힘을 깨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세상을 모두 주겠다던 마귀의 유혹을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세상 것은 세상에게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라며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기에 우리도 세상 사람들의 조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명예를 위해 사람들 눈치를 보며 살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됩니다. 세상 것은 세상에 남겨두고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립시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상황들에 지배받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들을 지배하는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새롭게 하소서>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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