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5그때에 바리사이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의논하였다. 16그러고는 저희 제자들을 헤로데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17그러니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18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의를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20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21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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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식별력을 주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오늘 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면, 황제에게 세금 바치기를 거부하는 유다 백성의 원성을 살 것이고, 세금을 바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 집권층의 미움을 살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선을 끄는 인물은 ‘바리사이’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종종 ‘헤로데 당원’들과 결탁하여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하곤 합니다.(마르 3,6; 12,13 참조) 바리사이들은 히브리어로 ‘파라쉬’이며, 의미는 ‘구분된 사람’입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헤로데 당원’은 기원후 4년부터 39년까지 갈릴래아와 요르단 강 건너편 페레아를 다스린 헤로데 안티파스를 지지하는 인물들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율법 연구와 올바른 해석을 위해 ‘따로 떼어놓아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세속 권한을 위해 정권과 결탁하는 인물들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바리사이 제자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십니다.(18절) ‘위선자’는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며(23,3),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일을 하고(23,5), 인사받고 스승이라 불리기를 좋아하며(23,7),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눈먼 인도자들(23,16)입니다. 십일조는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중요한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23,23), 의인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찬 사람들(23,28)입니다. 예수님은 ‘위선자’들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세금으로 내는 돈을 가져오게 하십니다. 그들이 가져온 ‘데나리온 한 닢’(22,19)은 포도원 일꾼한테는 하루 임금이지만 가진 자들한테는 한 번의 저녁 만찬을 위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동전은 주권국인 로마의 승인을 받아야 만들 수 있었기에, 동전은 황제가 가진 막강한 권력, 하느님의 것마저도 손에 넣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로마 권력의 힘을 대표합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이 사랑으로 당신 모습을 주조하여 거기에 당신 모습을 박아 넣으신 ‘인간’을 가리킵니다. 창조물인 인간이 창조주께 돌려드려야 할 유일한 ‘세금’은 창조주를 창조주로 알고 기억하는 것, 해 뜨는 곳에서도 해 지는 곳에서도 그를 빚어내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제1독서: 이사 45,56) 모든 만물이 하느님의 것이며(시편 50,1013),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완전한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오기 때문에(야고 1,17 참조) 인간은 사실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 외에는 돌려드릴 것이 없는 가난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바리사이 제자들이 ‘경탄했다’고 전합니다. ‘경탄했다’라는 그리스어(에타우마산, )의 어원은 말을 잃고 그저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밖에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놀랐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가득 찬 놀라움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바리사이들은 누구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피상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자신들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어두움과 애매모호한 정체성의 뿌리를 들여다보라는 영적 초대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사이와 제자들의 마음 안에 많은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황제의 것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 안에 살면서 율법을 연구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아진 소명을 받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것을 제대로 의식하고 사는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면 나는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묵상(Meditatio)
주님, 오늘날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리라는 말씀은 저에게 “‘하느님의 것’은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합니다.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것’은 ‘저 자신’입니다. 저를 위해 바다를 가르고 별을 만들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시어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이사 43,12) 그 어떤 국가와 집단과 개인의 권력도 ‘하느님의 것’인 한 인간을 자신의 그릇된 목적을 위해 도구로 사용하거나, 그가 약하다고 해서 그의 삶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초상과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진 한 인간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한 국가와 우주 전체와 맞먹습니다.
기도(Oratio)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모든 신들 위에 경외로우신 분이시다.(시편 96,4)
임숙희(가톨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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