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월17일 월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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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10-17 | 조회수636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10월17일 월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루카 12,13-21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베드로 사도의 재채기>
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큰 탁자가 중앙에 놓여있고, 그 앞에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수많은 성인성녀들께서 앉아계셨습니다.
그 탁자 위에는 수많은 촛불들이 켜져 있습니다. 그 촛불 하나하나는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생명 하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촛불들을 점검해보기 위해 그 앞을 지나가시다가 갑자기 재채기를 하게 되었는데, 하필 촛불로 향하는 바람에 촛불 세 개가 꺼져버렸습니다.
촛불 세 개가 꺼져버렸다는 것은 세 사람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순간 지상에서 잘 지내고 있던 세 사람, 아직 올라오지 말아야 할 세 사람이 갑자기 봉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세 사람은 즉시 베드로 사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미안했던 베드로 사도께서는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하시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지상으로 다시 돌려보내면서 고생한 대가로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씩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저는 평생 말단 공무원으로 지냈는데, 높은 위치에 한번 앉아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너무 높은 자리는 골치만 아플 것이니, 적당한 자리를 하나 알선해주겠네.” 하시면서 꽤 높은 지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평생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거금 한번 만져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셨습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여기 가져가시오.” 하는데 보니, 10억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돈도 지위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경치 좋고, 조용하고, 마음이 평화롭고, 괴롭히는 사람 없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안식을 누리고 싶습니다.”
그 때 베드로 사도가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아십니까?
“에끼, 이 사람아! 그런 좋은 곳 있으면 나부터 가겠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영혼의 우위성’ ‘영적 생활에 대한 우선권’ ‘천상적 삶의 가치’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최 우선권을 부여하는 가치, 대상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돈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돈의 위력, 정말 대단합니다. 사람을 쥐었다 놨다 합니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딱 한 가지 생각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단단히 한 몫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급속도로 재산을 증식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에게 한 차원 높은 단어들은 거추장스럽기만 합니다. 봉사, 희생, 나눔, 가족애, 우정... ‘그까지 것들’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단연 첫째가는 화두는 자녀교육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자신의 미래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겁니다. 그렇게 투자한 자녀들이 자신의 미래를 확실하게 책임져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자녀가 내 노후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건강이나 외모도 빠지지 않는 화제 거리입니다만 장례식에 자주 가면서 늘 보게 됩니다. 결국 한 줌 재더군요. 결국 한 줌 흙이더군요.
어떻게 해서든 보다 덕스럽고, 보다 영예롭고, 보다 가치 있고, 보다 의미 있는 것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다름 아닌 영혼에 대한 투자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이 지상생활을 마무리 짓고 하느님 대전에 나아갔을 때, 우리가 그토록 물불 안 가리고 투자했던 육신은 다 두고 건너가야 합니다.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그간 노력해왔던 영적생활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요, 봉사요, 희생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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