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개문유하(開門流下)의 삶 - 10.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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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0-18 | 조회수420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1.10.18 화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2티모4,10-17ㄴ 루카10,1-9
개문유하(開門流下)의 삶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이 새로우면 모두가 새롭습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강처럼 살 때 모두가 새롭습니다.
주님 안에 머무를 때 산 같고, 주님과 함께 흐를 때 강 같은 삶입니다. 밖으로는 정주(定住)의 산 되고, 안으로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 되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우리 분도회수도승들입니다.
-밖으로는 산/안으로는 강/산 속의 강 천년만년 님 기다리는 산/천년만년 님 향해 흐르는 강-
분도회 영성을 압축한 제가 애송하는 자작시입니다.
얼마 전 피정을 마치고 간 어느 분이 남긴 글입니다.
-늘 한 결 같이 계시는 하느님처럼 15년 만에 찾은 이곳이 큰 변화 없이 있어 참 감사드립니다. 또 돌아가서 기도하며 하루하루 다시 살아보렵니다.-
늘 언제나 그 자리의 산 같은 수도원에서 한결같은 하느님을 발견한 분의 감사어린 인사입니다. 안으로 끊임없이 깨어주님과 함께 흘러야 안주가 아닌 정주의 산 같은 삶입니다.
얼마 전 읽은 무위당(無爲堂) 장 일순 선생님(1928-1994)에 대한 아름다운 소개 글이 좋아 인용합니다.
-생전의 이 영희 선생이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했던 깊은 안목과 너른 품을 가졌던 또 한 없이 겸손했던 사상가 무위당 장일순은 원주에서 협동과 상호부조, 농촌 살림의 운동을 열고 이 일을 돌아갈 때까지 도우셨다. 서예가이기도 했던 그가 남긴개문유하(開門流下;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라)라는 말씀 속에 담긴민중 정신과 넉넉한 개방성을 생각한다.-
개문유하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좌우명으로 삼아 늘 대하고 싶은 글귀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제자들의 삶이 그러했고우리가 지향하는 삶 또한 그렇습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꼭 제자들은 파견하시는 모습이 개문유하의 글귀를 연상케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 목표를 향해 흐를 때 순수하고 단순한 삶입니다. 세상 무엇에도 매이지 않은 홀가분하고 자유스런 삶입니다. 이래야 세상 이리떼 가운데 양으로 살 수 있습니다.
목표를 잃어 방황하거나 이리저리 지체할 때 유혹에 빠지거나 악마의 덫에 걸리고 이리떼의 공격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사는 주님의 일꾼들이 목마르게 그리운 시절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이래서 좋은 주님의 일꾼인 성소자를 보내 주십사 기도해야 합니다. 안팎으로 비워 갈 때 충만한 삶입니다. 동료들이 다 떠난고립무원의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도 바오로가 좋은 모범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계시는 주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를 통해 완수되는 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 평화와 치유가 선사되고 하느님의 나라가 열립니다.
“주님,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게 하소서.” 오늘 복음의 화답송 후렴처럼제자들은 물론 주님께 충실한 우리들을 통해 주님 나라의 영광이 알려집니다.
끊임없이 깨어 아래로 흐르는 개문유하의 삶 자체가 그대로 복음 선포의 삶입니다.
정주를 사는 우리 수도승들은 매일, 평생, 일과표의 궤도에 따라 강같이 흐르는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하여 수도원을 찾는 많은 이들이 위로와 평화도 선사 받고 영육도 치유됩니다.
우리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은 매일 당신 안에 산 같이 머물러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를 당신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어 생명의 강으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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