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월 20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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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10-20 | 조회수824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10월 20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루카 12장 49-53절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매일이 축제요, 매 순간이 구원>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이 세상의 년도를 센다는 것,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말은 다름 아닌 예수님 탄생 시점을 인류의 새로운 기원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탄생을 통해 이 세상은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탄생 이전의 세월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탄생을 기점으로 이 세상은 새로운 국면, 새로운 전환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역사,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 이전이 구세주 메시아를 고대하던 기다림의 세월이었다면 탄생 이후는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축제를 만끽하는 기쁨의 순간입니다.
예수님 탄생 이전의 날들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던 노예 상태이었다면 탄생 이후의 날들은 죄와 죽음의 사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은총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다른 시대가 아니라 예수님 탄생 이후에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존재 자체로 인해 완전 무상으로 구원에로 초대되고 있습니다. 매일이 축제요, 매 순간 구원을 맛보여,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단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그리스도로 받아들임으로 인해, 그분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따지지 않고 믿음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탄생은 그 자체로 인류의 많은 고민들을 단번에 해결해주었습니다.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하던 상황을 너무도 간단하게 정리해주었습니다. 갈 길 몰라 방황하며 우왕좌왕하던 백성들에게 너무도 명백히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예수님 탄생으로 인해 그 방법은 너무나 쉬워졌습니다.
이것 저 것 따지거나 앞뒤 재지 않고 그저 단순히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구세주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 이전에는 선과 악의 기준이 있었지만 때로 모호했고, 때로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명확해졌습니다. 이제 선을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입니다. 그렇다면 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 사랑의 계명을 나 몰라라 한다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이요, 죄요,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 처음에는 참으로 모호하고 애매했습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찬찬히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니 그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인류는 항상 두 패로 구분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예수님 편에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예수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이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 한 가지가 주어지는군요. 그리스도인인 우리 각자는 예수님처럼 활활 타오른 불이 되어, 예수님 편에 서있지 못한 사람들을 예수님 편으로 안내하는 일입니다. 죽음의 땅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이웃들을 생명의 땅으로 건너오게 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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