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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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10-22 | 조회수31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9 바로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우리의 삶 속에 안타깝게 불행을 당하는 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은 그 이유조차 확실하질 않습니다. 힘 없이 당하기만 해야 하는 불행한 인생 앞에 우리는 어떤 해석을 내 놓기도 힘든 경우를 만납니다. 복음 속 빌라도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함께 생겨난 일은 하느님께 바쳐질 제물이 피로 물들어 버렸습니다. 이방 지배자에 의해 힘 없이 동족이 죽었고, 그로인해 하느님께 바쳐질 제물이 부정하게 된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일에 대해 예수님이 말문을 여십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또한 억울한 일 뿐만 아니라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도 우리가 가지는 궁금증에 대해서도 이러한 일이 그 사람들의 숨겨진 부족함이나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십니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우리가 궁금해하는 이러한 일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합니다. "아니다." 이러한 일들의 이유는 하느님께 묻지 않아도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배자의 권력에서 내려지는 잔인한 통치행위의 결과입니다. 또한 권력이나 부유함이 삶의 질서를 세우는 현실에서도 이러한 억울하고 잔인한 죽음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인해 그 삶의 내용과 상관 없이 목숨을 잃는 일들도 우리에겐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죽음과 불행에 대해 자주 이유를 묻고, 의미를 부여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이들이 삶의 잘못이나 부족함 때문에 죽음과 같은 불행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하나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 외의 답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저 그들의 죽음은 하느님께 맡겨진 것 만이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이들의 불행에 이유를 묻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불행을 겪은 이들의 이유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확실한 죽음의 이유가 있으나 그것은 회개하지 않는 삶의 결과가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죽음으로 드러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행한 죽음과 멸망의 결과를 알고 있는 이가 회개하지 않아서 당하는 결과는 그 모습이 같은 듯 표현되고 있지만 예수님은 분명 그 불행한 이들의 죽음이 죄와 관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토록 죽음에 불안해 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회개할 것과 그 회개의 기회를 위해 하느님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는지를 알아듣도록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바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 이야기입니다. 이 무화과 나무가 삼년 동안 열매가 없다는 것은 과일을 맺는 나무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나무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을 뜻합니다. 죄가 깊어 희망을 걸 수 없는 죄인이 되어 버린 사람과 같은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든 삶의 불행을 그런 죄의 결과로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초라한 사람들과 닮아 있는 나무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비유 속의 포도재배인은 그 포도밭의 주인에게 일년의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이미 늦어버린 나무에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다 말하며 당연히 열매가 맺히리라 희망하는 재배인입니다. 이 재배인은 설명하지 않아도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레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 안에 당신이 자리하고 계심을 말하고 거름은 이미 포기해야 할 무화과나무처럼 비관적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다시 가르치고, 그렇게 죄인들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노력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하면 남은 일 년 동안 당연히 열매가 열릴 것이라고 희망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포도재배인인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기울이시는 노력과 그분이 품고 계시는 밝은 희망은 실로 놀랍기만 합니다. 삼 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는 자신의 노력으론 지금껏 쌓여진 죄의 결과들을 헤어날 수 없다고 좌절한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눈에 포기해버린 수많은 죄인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이들의 삶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라 희망하십니다. 이런 하느님의 희망 앞에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같은 불행한 일들이 단순히 죄의 결과로 내리시는 하느님의 벌이라는 판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도 다시 일어나려 하지 않는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바로 불행한 결과를 향하는 것임만 명심하며 다시 일어서서 우리에 대해 희망하시는 그 기적적인 희망에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도 포기한 삶에 희망을 거시는 주님만 생각하며 그분처럼 살아가는 것에서 열매가 맺히고 무화과 나무는 포도밭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나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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