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하라 - 10.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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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0-23 | 조회수327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11.10.23 연중 제30주일(전교주일) 탈출22,20-26 테살1,5ㄴ-10 마태22,34-40
사랑하라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자 사랑의 계절입니다.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가장 모르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듯 느껴지는 사랑입니다. 사랑 앞에 서면 늘 제자리의 초보자처럼, 무능력자처럼 느껴집니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삶이며 사람입니다. 사랑하며 살기에 비로소 사람입니다.
사랑이 빠지면 애당초 삶도 사람도 없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랑은 생명으로 직결됨을 봅니다.
밥만 아니라 사랑도 먹어야 삽니다. 눈 만 열리면 널려있는 사랑입니다. 멀리 있는 사랑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사랑입니다.
온통 사랑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물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처럼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사랑 속에 살아가면서 사랑에 목말라 하는 역설적 사람들입니다.
새벽 별들 총총한 하늘을 보는 순간 예전에 써놓고 행복해 했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가슴에 담고 담아도/끝없는 별들/가슴에 담고 담아도/끝없는 사랑-
사랑하라 주어진 삶입니다.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인생입니다. 하느님은 매일 스물 네 시간의 시간 밭에 사랑 농사를 지으라고 누구나에게 스물 네 시간의 선물을 주십니다.
삶과 농사는 어찌나 그리 흡사한지요. 삶의 농사라 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해도 해도 끝없는 농사 일, 사랑일입니다.
농사에는 언제나 초보자라 고백하는 농부들처럼 사랑에는 늘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 밭에 사랑의 농사는 잘 되고 있는지요.
가을 수확이 끝난 배 밭 사이 길을 지날 때는 참 넉넉하고 편안합니다. 텅 빈 허무가 아니라 텅 빈 충만의 평화입니다. 사랑의 열매 가득했던 추억들 때문입니다.
평생 사랑 농사 잘 지어 사랑의 추억들 넉넉해야 텅 빈 충만의 행복입니다. 흉작으로 인해 배 열매들 빈약했던 배 밭이라면 텅 빈 허무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이듯 사랑의 열매들 빈약했던 삶 역시 똑같은 분위기일 것입니다. 오늘은 사랑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십니다. 오늘 1독서 탈출기의 마지막 주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자비하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십니다.
하느님 자비로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끊임없이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이요, 사랑의 일을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사랑의 일을 하시며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입니다. 수도원 주변의 단풍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경관 이 또한 하느님 사랑의 업적입니다.
도대체 하느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살아갈수록 끊임없이 늘어가는 하느님 사랑의 빚입니다. 농사일도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80%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고백합니다.
하여 성경의 시편도 온통 하느님 사랑의 체험의 고백들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할 수 있을까를 우리 필생의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신비가로 살라고 불림 받고 있습니다. 테살로니카 교인들처럼 우리 역시 이미 세상의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계신 참 하느님을 섬기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할수록 신비가의 행복입니다.
숨 쉬듯 사랑을, 하느님을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살아있음이 바로 사랑 체험이요 하느님 체험입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십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들입니다. 자비로운 삶이 아니 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도, 참 내가 될 수 있는 길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느님 사랑을 체험할수록 자발적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의 삶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엄중한 명령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자발적이든 의무적이든 말 그대로 ‘살기위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목숨을, 정신을 다해 갈림 없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의 일치요 순수한 마음입니다.
목숨을 걸고 책을 만든다는 어느 분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바로 목숨을 다해,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영육의 일치와 치유, 건강입니다. 대부분의 질병들은 마음 갈림에서, 몸과 마음의 분열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할 때 마음의 순수와 겸손이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저절로 삶으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수행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듯 기도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모든 일을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참 행복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떠나선 세상 어디에도 참 행복은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목숨을 걸고 사는 우리 수도승들 역시 매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듯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고 노동을 합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십시오. 참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공동체 생활입니다.
혼자의 삶이라면 누구를 사랑합니까? 하느님 사랑의 진정성은 이웃 사랑으로 입증됩니다.
주님의 두 번째 엄중한 명령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좋고 싫고의 감정적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의무의 사랑입니다. 항구히 노력하는 의지적 사랑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을 하라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이 우리의 이기적 사랑을 순수한 사랑으로, 편협한 사랑을 넓고 깊은 사랑으로 변형시킵니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 있어 백절불굴의 이웃 사랑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우리의 이웃 사랑에 전제되는 것이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모두에게 자비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1독서에서 보다시피 이방인, 고아, 과부, 가난한 자 등 약자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명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결론으로 ‘나는 자비하다.’ 말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자비를 체험한 이들은 이웃 사랑으로 응답하기 마련입니다. 이웃 사랑 그 자리에서 자비의 주님을 만납니다.
위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옆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느님 주신 공동생활입니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계명에 달려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하여’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한 번 사랑으로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늘 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사랑입니다.
매일, 평생 졸업이 없는 ‘사랑의 인생학교’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당신 사랑을 부어 주시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18.2).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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