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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마인들의 묘지에서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24 조회수497 추천수10 반대(0) 신고
 
 

바람도 쏘일 겸 나뭇그늘 아래 누워 편하게 책도 좀 볼겸 늦은 오후 로마인들을 위한 공동묘지에 갔다. 우리나라의 공동묘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그 곳에는 위령의 날을 하루 앞두고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안쪽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던 내 시야에 연세가 무척 많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남편으로 보이는 한 분의 무덤 앞에서 사진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옆에는 아들 혹은 딸 내외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서 있었고 그들은 쌍둥이를 위한 유모차에 정말 복제라도 한 듯 똑같이 생긴 콩알 만한 두 녀석을 데리고 있었다. 온통 얼굴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왕방울만한 눈알밖에 없을 정도로 작은 그 두 녀석은 자기처럼이나 똑같이 생긴 젖병을 각각 하나씩 물고 열심히 빨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길 건너편에 서서 한참 동안 그 가족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불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듯한 그 늙은 할머니의 주름잡힌 얼굴과 살기 위해서 거의 본능적으로 젖병을 열심히 빨아대는 그 쌍둥이 놈들의 하얀 얼굴을 보고 서 있노라니 마치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 드라마 한 편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이제 머지않아 그 할머니는 자신의 남편처럼 묘비의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고 젊은 부부는 할머니의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있을 것이다. 또 세상모르게 젖병을 빨고 있는 저 놈들은 각자 다른 짝을 만나서 지금의 자기들처럼 쪼그만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아무도 이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머지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존재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면 어렸을 적의 자기 사진속의 얼굴과 거울 속의 지금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들여다 보라. 늘어난 주름이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이다.

이러한 우리들 존재의 사라짐이 두려운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천 년, 만 년 살다갈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자. 백년도 살지 못하면서 마치 천년이나 살 것처럼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찬 우리들 인생을 불쌍히 여기도록 하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갈 뿐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사라지게 된다. 나는 그 시간을 편하게 ‘내일’이라고 부른다. 난 내일 죽는다고 생각한다.

자, 만약 정말로 내일 죽는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9,11사건 당시 무너져 내리는 건물 속에서, 또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연기에 질식하기 직전 지하철 객차 안에서 죽음을 바로 코 앞에 둔 사람들 중 몇몇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혹은 엄마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나는 그들의 최후의 순간을 통해서 내일이면 죽게 될 내가 오늘,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나는 오늘 사랑한다고 ‘너’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백한 바대로 ‘너’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너’에 대한 ‘나’의 봉헌이다. ‘나’의 사랑을 ‘너’에게 다 건네주고 나는 가볍게 떠나고 싶다.

그것이야 말로 한 인생의 참다운 완성이다. 마지막 떠나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떠나고 싶다면 스스로의 삶을 완성시켜라. 그 완성이란 다 봉헌하고 하나도 남지 않은 텅 빈 시간과 공간이다. 우리들의 인생은 그 텅 빈 시간과 공간으로 끝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들의 주님께서 우리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완성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봉헌하시는 순간에 하신 말씀을 잘 묵상해 보자. 완성은 이런 것이다.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19,30)

날이 저물고 무덤가에 밝혀 둔 촛불들이 하나 둘 씩 꺼져 갈 때까지 나는 이 말씀을 되뇌이며 묘지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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