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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 먼저 거지가 되시다 [인간의 참 해방자]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24 조회수357 추천수0 반대(0) 신고
 
 
 
기도는 머리로 하지 않고 기도는 마음으로 한다
 
 
기도란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을 때에도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입니다. 겸손기도의 초석이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릅니다” 겸손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가짐이다. “인간은 하느님께 비는 걸인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내가 존재하고 내가 머무는 거처(‘내가 내려가는 곳’)이다. 마음은 우리의 숨겨진 중심이다. 그러기에 오로지 하느님성령만이 마음을 살피고 감지하실 수 있다. 마음은 우리 심리적 성향의 가장 깊은 곳이기에 결단을 내리는 자리이다. 마음은 우리가 삶이나 죽음을 선택하는 곳 바로 진리의 자리이다.
 
 
 
'걸인'인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먼저 '참 거지'가 되셨다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부르신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를 잊거나 또는 창조주의 면전에서 멀리 숨더라도, 또는 자기를 버렸다고 하느님을 비난하더라도, 살아 계신 참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기도신비로운 만남으로 끊임없이 부르신다. 기도에서, 성실하신 하느님의 이 사랑의 행위는 언제나 앞서는 것이요, 인간의 행위는 언제나 이 사랑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하느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요한 4,10) 우리가 물을 길으러 가는 우물가, 바로 그곳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놀랍게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나시려고 우물가로 나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시고, 마실 물을 달라고 우리에게 청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목말라하신다. 예수님의 청은 우리를 갈망하시는 하느님의 깊은 목마름에서 나온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기도는 하느님의 목마름과 우리 목마름의 만남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목말라하기를 갈망하신다.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 4,10). 역설적으로 우리의 청원 기도는 하나의 응답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탄식에 대한 응답이다. “내 백성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예레 2,13). 청원 기도는 무상의 구원을 약속해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며, 외아들의 목마름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찬 응답이다.
 
 
<검정색 교리서 참조 /  파란색 본인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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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인간 관계
 
 
어떤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버려진 '빈곤한 존재들'이다. 세상은 그런 우리를 세상이 자기의 품 속으로 받아 거두어 들이지 못한다. 세상은 우리를 지배하려고만 할 뿐이며 우리를 참되게 해방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우두머리는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는 인간에게 세상을 얼만큼 넘겨주면서 사실상 세상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세상과 인간의 관계에서 세상의 우두머리는 인간이 눈을 들어 자신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보지 않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변화를 맡겨 주는 듯이 인간 손에 세상을 쥐어주는 것처럼 한다.
 
세상 우두머리인 이 독재자는 세상 안에 있는 '세상 인간'을 활용하여 세상적인 방식으로 지배한다. 정치의 독재자들 처럼 세상 우두머리도 그러하다. 창세기 뱀을 수용한 인간은 세상을 선택했다. '세상 인간'이기를 결정한 인간에게 뱀은 세상을 주면서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 안에 있는 인간'과 '인간 안에 있는 세상'은 다르다. 세상 안에 있는 인간은 먼저 세상을 생각한다. '세상 인간'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의 지배를 당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독재자인 세상 안에서 독재자에게 절하는 '세상 인간'은 세상의 도구가 될 뿐이다.
 
그에 비하여 '인간 안에 있는 세상'이라고 할 '인간 세상'은 세상보다 먼저 인간을 생각한다. '인간 세상'의 사람은 세상의 지배에서 탈출한다. 독재자의 이집트에서 탈출하듯이 하느님을 향하여 간다. '인간 세상'은 그리하여 세상의 도구가 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상 인간'과 인간을 바라보는 '인간 세상'은 근본적인 차이가 내재한다. '세상 안의 인간'은 세상의 도구로써 세상 우두머리 속에서 인간을 역시 지배하고 '인간 안의 세상'은 하느님의 도구로써 백성의 우두머리이신 예수님 속에서 인간을 다스린다. 
 
"인간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여주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세상의 지배를 받게 된 사람을 해방시키시는 것이다. 세상이 먼저가 아니라 인간이 먼저인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처음부터 본인의 주장이었다> <나는 부산 출신이다> '인간 세상'이 '세상 인간'으로 변질되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해방시키시는 인간의 참 해방자이시다.
 
인간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여주신 참 인간이시다. 인간을 먼저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오늘 복음에서도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걸인인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우리보다 더 거지가 되신다는 것을 나타내어 주신다 하겠다. 세상 안의 인간이 가장 명심해야 할 일은 다른 누구보다 세상 정의를 주장하지만 그들 자신이 먼저 '인간 세상'을 위한 참된 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 안에 있는 인간은 세상 독재자의 세상 지배를 받는다는 뜻을 깨치지 못하면 사람은 불행해 진다. 선구자는 인간이 되어야 하며 세상이 되면 안 된다 하겠다. 세상을 탓하는게 아니라 인간이 변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들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자요한의 소리도 ' 참 사람이 되어라'는 소리이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참 사람이심을 (인간을) 인간에게 드러내 주신 것이다. 인간의 참 해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과 같다.
 
 
 
 하느님과 인간 관계
 
 
신약에서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무한히 선하신 성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령과 맺는 생생한 관계이다. 하늘 나라의 은총이란 “거룩하고 고귀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이 온전히 결합되는 바로 그것이다. <교리서 참조>
 
하느님께서 점차 당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에게 차츰 인간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심에 따라,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에게 하는 호소, 상호 간에 맺어지는 계약이 되는 것이다. 말과 행위를 통하여, 이 계약의 드라마는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이 드라마는 구원의 역사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교리서 참조>
 
 
 
 
십자가 인간(십자가의 사랑)의 기도는 삶이 되고
십자가 인간의 삶은 기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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