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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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10-24 | 조회수30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년 10월 24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안식일에 회당장은 몸이 아픈 이들에게 두려움에 차서 말합니다. 이미 한 여인은 열 여덟해를 앓은 병에서 일어난 다음입니다. 회당장의 눈 앞에는 그 여인을 낳게 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회당장은 안식일에 일어난 이 기적을 어떻게도 규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안식일은 어떤 의미인지 고려되지 않는 절대 규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돕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는 안식일의 모습에 경악할 수준의 이스라엘의 율법주의를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 비친 것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설명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신 일 조차 안식일을 어기는 것으로 규정하고 말씀을 꺼내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예수님의 말씀은 평소의 모습과 달리 느껴집니다. 마음이 많이 상하신 듯 올바른 정의를 통해 잘못된 율법주의를 나무라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숨겨진 잘못을 들추시며 노기띤 음성으로 이들을 몰아부치십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셨을까요. 예수님의 앞에 펼쳐진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예수님 앞에 막아선 회당장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수많은 병자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병으로 인해 죄인으로 살아온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윽박지르는 회당장의 모습과 그 옆에 병에서 낳고도 더 큰 죄를 지은 듯 서 있는 여인이 보입니다. 겉으로는 안식일의 법을 어겼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진 것에 화가나 힘없는 이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회당장의 모습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더 중요한 힘있는 이들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선자"라는 표현으로 이 상황을 설명해내십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의미로 문제를 풀지 않으심은 이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숨겨진 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안식일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사람의 눈을 피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모습은 하느님 뒤로 숨기고 율법에 충실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방어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치유를 보고 한 껏 기대에 부푼 힘겨운 인생들의 기대를 꺽어버리는 이 회당장의 모습에 분노하신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두 가지 모습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겠는지 그들 마음에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분명한 위법을 지적한 회당장이 망신을 당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뒤에 서서 하느님이 원하신 안식일의 의미를 드러내기보다 사회적 지위나 알고 있는 지식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고 상대적인 윗자리도 차지하는 이들은 오늘 아무렇지도 않게 하느님 앞에서 그들의 본 모습을 드러내었기에 부끄러움을 당한 것입니다. 하느님도 죄인이 되는 안식일, 고통스런 상황을 안식일 때문에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 안식일에 하느님도 힘없는 사람들도 죄와 고통으로 내 몰며 자신의 도덕성을 높이는 회당장. 이 모든 잘못을 되돌려 놓은 것은 양심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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