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죽음의 슬픔’은 ‘찬미의 기쁨’으로 - 10.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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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0-24 | 조회수42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1.10.23 월요일 고(故) 탁 재호(베드로) 수사(1924-2011)를 위한 장례미사 욥기19,1.23-27 요한6,37-40
‘죽음의 슬픔’은 ‘찬미의 기쁨’으로
죽음의 슬픔을 찬미의 기쁨으로 바꾸는 위령미사와 위령성무일도의 은혜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찬미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믿음을 북돋아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했던 수도 선배 고(故) 탁 베드로 수사의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수사님은 지난 주일 새벽 선종과 더불어 즉시 부활하신 주님의 나라로 옮겨져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셨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의 옮겨감이요 지상의 장막 집 에서 하늘에 새 거처로 옮겨감입니다.
가장 많이 아는 것 같지만 가장 모르는 게 죽음이요,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으나 가장 가까이 있는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 모든 환상은 걷히고 남는 것은 하느님 믿음뿐입니다. 하여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믿음을 북돋우며 선종의 죽음을 맞이하게 합니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하느님께 바라라. 나는 다시 그 임을 찬미하게 되리라. 내 낯을 살려주시는 분, 내 하느님을.” “주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한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미하라.” “하느님이 그의 구원이신 자, 그의 희망 하느님이신 자는 복되도다.”
아침 위령성무일도 중 큰 위로를 주었던 시편 구절들입니다.
죽음에 대한 답은 하느님 찬미뿐입니다. 하느님 찬미가 죽음의 슬픔을 천상탄일의 기쁨으로 바꿉니다. 죽음을 통해 오매불망 그리던 하느님의 얼굴을 뵙습니다.
평생 하느님을 찬미하다 하느님께 돌아가신 ‘믿음의 사람’, 탁 베드로 수사님입니다. 수사님의 삶을 통해 은은히 배어나오는 믿음의 향기입니다.
1924년에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셔서 일제 강점기에 이은 해방 전후의 혼란기와 6.25 사변을 겪으시며 고단한 삶을 사시다가 1955년 당시는 32세의 많은 나이로 하느님의 집, 수도원에 입회하셨습니다.
입회하신 후의 삶은 그대로 소박한 믿음으로 일관된 삶이셨습니다. 낙산농장-목공소-서울 분도회관-읍내농장- 분도출판사 서울지사-부산분원- 금남분원-본원, 출판사 사무실- 우표수집 정리의 평범한 소임을 순종의 믿음으로 충실히 수행하셨던 수사님이셨습니다.
2008년에는 수도서원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여 ‘믿음의 금지팡이’를 받으시고 성공적인 수도생활의 대미를 장식하셨습니다. 지난 9월 폐암인 사실을 아시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병실에서 형제들의 간병을 받다가 평화롭게 선종하셨습니다.
수사님의 믿음은 전혀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하고 성실하고 친절한 삶으로 표현되었던 수사님의 믿음이었고 언제 대하여도 미소 띤 친절한 얼굴과 말씨로 모두에게 평화를 주셨던 수사님이셨습니다.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도 존대 말을 쓰며 예의를 갖추셨던 수사님이셨습니다.
마지막 고통의 임종시기에도 하느님 믿음의 끈을 꼭 붙잡고 기도하셨을 수사님이심이 분명합니다.
아마 욥과 같이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되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그분을 보리라.”
하느님은 바로 이런 수사님을 당신 나라로 불러 만나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릴 것이라 약속하신 주님은 수사님을 살리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찬미의 천상탄일 미사를 봉헌하게 하십니다.
“주님, 탁 베드로 수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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