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던 본당은 신축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수도회에 들어올 때까지 아직 외벽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사무실도 임시로 합판을 가지고 만든 허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마철에는 비가 들어와 온통 물바다가 되고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붙곤 했습니다. 워낙 가난한 동네라 공사기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공사기간이 길다 보니 실질적으로 성당 일을 맡고 계시던 분들은 차츰 지치셨고 가끔 의견이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여느 날처럼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성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그 전날 쏟아진 비로 대홍수가 나 임시 사무실 안까지 물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당혹스럽고 화도 나고 슬펐습니다. 저녁 미사를 위해 물을 바깥으로 퍼내고 있는데 저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신자 분들이 한 분 두 분 오셨고, 오시는 분마다 걸레와 먼지받이·물통·빗자루 등 필요한 것을 하나씩 들고 물을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연로하셔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묵묵히 기꺼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 순간이 좋다. 이대로도 좋다.’ 너무 훈훈해 잠시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분명 하늘나라는 우리를 위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갈 수 없다면 그곳은 존재할 수 없는 곳이 됩니다. 겨자씨처럼 작지만 자라나 모든 것을 품는 사람들, 누룩처럼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지만 그로써 다른 이들의 존재를 풍성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그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곳에 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한기철 신부(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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