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
---|---|---|---|---|
작성자김형기 | 작성일2011-10-25 | 조회수1,26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가톨릭 신자로 오래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피정이나 세미나에 가끔 참가하기 마련이다. 오래전에 처음으로 성령세미나에 참가하고 나서는 주님 사랑을 깊이 느꼈다. 평생 죄짓지 않고 주님과 함께하리라 다짐하고 바로 성령기도회에 매주 참석했지만, 그 결심도 고작 서너 달밖에 가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성령세미나를 받은 후에는 주님 사랑도 그리 깊이 느낄 수 없었다. 교육 내용을 미리 알고 참가하니 감동이 덜했던 것이다. 성모 신심 세미나나 다른 피정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인가 피정이나 세미나에 참석하라는 권유를 받으면 다녀와서 서너 달 지나면 또 말짱 도루묵일 텐데 하는 생각에서 썩 내키질 않았다.
그런 내가 주님과 몇 달 동안이나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교통사고로 병원과 재활원에 입원해 있었던 기간이다. 생사를 넘나들 때는 저녁마다 오늘 밤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눈물짓고는 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동이 트는 걸 느낄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오늘 하루 더 살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참 기뻤다.
입원 중에 기도에 구멍을 뚫어 산소호흡기를 연결하면서 성대에 문제가 생겨서 6개월이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지냈다. 육신의 고통이야 혼자서 감당할 수 있었지만 말을 못하니 참 외로웠고 혼자서 이런저런 감정을 삭이려니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벽에 걸린 게시판에 모셔둔 자그마한 십자고상을 보게 된 것이 큰 은총이었다. 몇 달 동안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주님과 대화를 나누며 주님이 늘 내 곁에 계심을 느낀 그 당시는 육신은 고통스러웠어도 마음은 참 행복했다. 퇴원 후에 기력이 없어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주님과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가 애타게 찾지 않아도 주님은 늘 내 곁에 계심을 알았다. 아니, 주님은 내 옆에 늘 함께 계시며 내가 주님을 찾기를 간절히 기다리심을 느꼈다.
그런데 건강을 되찾아가며 아침에 동이 트는 걸 느끼면서도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한시도 십자고상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내던 내가 늘 그 자리에 있는 십자고상이 있는지조차 잊게 되었다. 가끔 주님에 내 곁에서 떠나셨다는 느낌이 들면 서글펐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던 참에 동갑내기 교우 즈가리아 형제가 꾸르실료 피정 참가를 권했다. 불편한 몸으로 집 떠나서 아내 도움 없이 지내기가 쉽지 않지만, 앞뒤 재지 않고 선뜻 응했다. 이게 바로 주님의 부르심이려니 하고.
올해 봄에 내 고향 삼척이 배경이라는 말을 듣고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를 구해서 보았다. 연화 줄거리는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 겸 프로듀서인 은수(이영애)와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유지태)는 소리 채집 여행을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어느 날 밤 은수의 아파트에 머물게 된 상우는 정신없이 그녀에게 빠져든다. 상우는 이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이미 이혼의 경험이 있는 은수는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헤어지자는 은수의 말에 상우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며 지독한 상처로 고통스러워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궁금해졌다. 왜 사랑은 변할까. 왜 사람은 변할까. 그리고 얻은 결론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이다. 인간은 수시로 변하는 존재이므로 그럴 수 있다고 자신의 변덕을 합리화했다.
피정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몇 달 지나서 주님이 떠나신다고 느낀 건 왜일까? 그건 내 탓이었다. 사랑이 변한다고 느낀 건 바로 내 탓이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은 늘 내 곁에 계시는데 내가 주님을 찾지 않은 것이다.
이번 꾸르실료 피정에서 주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내가 언제까지나 네 곁에서 너를 짝사랑해야 하겠니?”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 나오는 대목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주님을 찾으면 주님은 나에게로 오시는 것을 잊고 살았다. 이제부터는 늘 주님을 부르며 살리라. 피정기간 중에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서 휠체어를 밀어주고 음식을 가져다 주는 등, 이것저것 세심하게 신경 써준 박즈가리아 형제와 문마태오 형제에게 감사드린다. (2011년 10월 24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