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꿈과 현실 - 10.2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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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0-25 | 조회수48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11.10.25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로마8,18-25 루카13,18-21
꿈과 현실 -하느님을 꿈꾸는 사람들-
꿈꾸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행복합니다. 살아있습니다.
꿈이 없는 삶은 살아있으나 실상 죽어있는 삶입니다. 꿈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누구나의 가슴 속에 있는 꿈이며 이 꿈을 키우고 이뤄야 행복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꿈에 있습니다. 꿈이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영원한 젊음입니다. 영혼에 세월의 풍화작용을 막아주는 게 꿈입니다.
꿈이 있을 때 샘솟는 열정에 순수요 그 영혼은 영원한 청춘입니다. 꿈과 현실은 함께 갑니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종교가 꿈이라면 이 꿈의 현실화가 정치입니다.
오늘은 꿈과 현실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모두가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을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도 독서의 사도 바오로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끊임없이 꿈을 현실화했던 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의 힘이 바로 꿈을 현실화 시킵니다. 창세기의 요셉도 야곱도 꿈꾸는 사람이었고 마리아와 요셉도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예언자들 역시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을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을 꿈꿀 때 하느님을 닮아 진선미의 사람이, 신망애의 사람의 현실이 됩니다. 하느님의 꿈이 우리의 모든 꿈을 정화합니다. 꿈도 잘 꿔야지 잘 못 꾸면 자신도 사회도 망칩니다. 바로 독재자의 꿈이 그러합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 모두가 하느님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도 밤마다 별꿈을 꾸시기에 영롱하게 빛나는 밤하늘입니다. 별 총총히 빛나는 새벽하늘 바라보고 배밭 길을 걸으며 하느님을 꿈꾸는 묵상의 행복을 어디다 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수도승들이 매일 바치는 공동전례기도 시간 역시 하느님을 꿈꾸는 천상의 시간들입니다. 평생 하느님을 찾는 삶, 평생 하느님을 꿈꾸는 삶을 살라고 불림 받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단풍 짙어가는 아름다운 자연 역시 하느님 꿈이 현실화 된 것입니다. 꿈, 희망, 비전이란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고 힘이 납니다. 모두가 같은 말입니다.
어제 안철수 씨의 말에서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식에 바탕 해 미래를 꿈꾸는 사회’ 바로 그가 희구하는 사회상이었습니다. 꿈을 잃어 절망하는 젊은 세대입니다. 박원순과 안철수에게 젊은이 들이 열광하는 까닭은 경쟁에 상처받고 지치고 절망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꿈을 주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할 말을 그가 했습니다. 꿈의 현실화를 바라는 그의 열망입니다. “이번 시장 선거는 부자 대 서민, 노인과 젊은이, 강남과 강북의 대결이 아니고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번 선거만은 이념과 정파의 벽을 넘어 누가 대립이 아닌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누구의 말이 진실한지, 또 누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를 묻는 선거여야 합니다. 선거 참여야 말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편법과 특권을 이기는 길이며 상식이 비상식을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성 가득 담긴 꿈의 현실화를 바라는 소망이 담긴 고백입니다. 꿈을 발견케 해주고 키워주고 이루어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어느 분의 안철수와 박철순의 비교도 의미심장했습니다. “안철수가 실리콘밸리 출신의 주류 혁신가라면 박원순은 사하라사막 출신의 비주류 개혁가다. 박원순은 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정치로 몰려가고 나처럼 기업에 투신할 때에도 가장 어렵고 외로운 시민운동에 남아 풀뿌리 운동의 모델을 만든 사람이다. 안철수가 컴퓨터 백신 프로그래머라면 박원순은 사회적 백신 프로그래머다. 그 점에서 안철수는 박원순이 자신의 양보를 받을 충분한 준비와 자격을 갖췄다고 인정한 것이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 본 것이다. 그런 만남을 386들도 오래 갈구해 왔다, 서로 다른 경로로 같은 목표를 꿈꾸던 사람들 간의 배려와 협업, 돌이켜보면 나도 기업이란 플랫폼에서 그것을 실현해 보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그 점에서 나는 안철수가 정말 부럽다. 박원순에게서는 안치환의 노래가 떠오르고 안철수에게서는 윤도현이 보인다. 안치화이 사회를 통해 자기 노래를 찾아갔다면, 윤도현은 자기 노래와 일을 통해 사회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촛불문화제나 집회에 윤도현이 나오는 게 안치환보다 반갑다. 주류 속에서 성공한 착한 이가 우리 편이라서 고마운 거다. 그러나 만약 안치환이 없다면 과연 그 자리는 어떨까?” 장황한 소개였지만 시사하는바 크고 깊습니다.
모두가 꿈의 사람들입니다. 꿈과 비전, 희망이 있을 때 타락하거나 속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오염, 속화되지 않고 언제나 순수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삶을 삽니다. 바로 이게 꿈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꿈 중에 꿈이 하느님 꿈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꿈이, 희망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내용이 좋아 그대로 많이 인용했습니다. 사도 바오로, 진정 하느님을 꿈꾸는 꿈의 사람, 희망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힘이, 성령의 지혜가 이런 꿈의 원천입니다. 우리에게 부단히 꿈을 발견케 해주고 키워주고 이루어주는 성령의 활동, 하느님의 활동입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을 꿈꾸는 분입니다. 늘 하느님의 나라를 꿈꾸며 현실화 시켰던 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느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겨자씨와 같은 작은 꿈이, 누룩과 같은 보잘 것 없는 꿈이 성령의 힘으로 현실화 될 때 지금 여기 하느님 나라가 실현됩니다.
하느님을 꿈꾸는 이 은혜로운 미사시간, 주님은 겨자씨의 말씀과 누룩의 성체의 꿈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오늘도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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