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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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10-25 | 조회수30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2-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늘나라에 대한 생각에 혼란이 일어납니다. 도대체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밀려듭니다. 하늘나라를 어떻게 이해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여행하시는 동안 한 사람이 묻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많은 것이 담겨 있는 질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그 구원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늘나라의 문 안으로 들어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부터 압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나 서로의 죄를 알기에 그 나라를 사람에게 쉽사리 허용할 수도 없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께 하늘나라의 진실에 대한 질문으로도 여길 수 있지만, 한 편으론 하늘나라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하늘나라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그만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인정해줄지 걱정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여시고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을 쏟아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나라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난관에 봉착합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좁은문을 모두가 기억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원하지만 뽑힌 이들이 적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하늘나라가 좁아져가는 순간입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또 다른 생각하나가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누가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주님의 가르침을 보고 배운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말할 것이라 하십니다. 분명 주님을 아는 사람인데도 하늘나라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씀이니 이제 하느님에 대해 안다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예수님은 기다리셨다는 듯이 말씀을 이어내십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하늘나라에 들어선 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과 예언자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믿음의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이들이니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별로 이상할 리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 하늘나라는 들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구원은 별로 못받는다고 생각해서 주님께 말씀드렸는데, 주님은 동의하시는 듯 하셨지만 이내 말씀이 바뀌었습니다. 동서남북에서 사람들이 모여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도대체 저 사람들은 누구냐는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또한 꼴찌가 첫째되는 이들이 있다는 말씀은 우리가 생각 속에서 하늘나라의 주인공에서 배제하거나 소외시킨 사람들까지 천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천국은 과연 아무나 못들어가는 곳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나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걸까요? 물론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은 그럼에도 불가능한 자격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을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문이 좁다고 말한 것은 우리가 아닐까요? 하늘나라는 참으로 우리 자격으론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그 문의 크기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그 문과 길을 좁고 험한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가집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하늘나라에 들어선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힘써 산 삶은 고통의 삶이나 불가능한 삶이 아니었고, 그저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한 생활이었고, 그 삶 자체가 행복한 삶의 과정이었습니다. 힘써 사는 것. 그것은 분명 우리 인생의 모습일 겁니다. 열심히 사는 삶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삶에서 하느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에겐 하늘나라의 문을 향해 힘써 달려가는 것입니다. 특별한 노력이 아닌 성실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하늘 나라에 가는 문입니다. 사실 하늘나라의 문이 좁다는 것은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그 문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에 그 문을 열고 닫는 것은 하느님의 몫이시지 그 문의 크기에 대해 길에 대해 우리가 논할 바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에게 그 생각대로 답을 돌려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나라와 구원을 걱정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이라 적고 걱정으로 대하는 이에게 하늘나라가 어떻게 쉽게 보이겠습니까? 생각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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