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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26 조회수851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Strive to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many, I tell you, will attempt to enter
but will not be strong enough.
(Lk.13.24)
 
 
제1독서 로마 8,26-30
복음 루카 13,22-30

요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는 아이패드를 저 역시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일정관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이 아이패드의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연결한 뒤, 화면에서 지시하는 내용을 잘 읽으면서 확인 버튼을 눌렀습니다. 상당히 복잡하고 물어보는 질문이 많더군요. 지루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확인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다시 켜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제가 전에 쓰던 프로그램들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 더 저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내년까지 적혀 있던 저의 일정들과 그 많은 연락처 역시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지요.

‘조금만 더 잘 보고서 이 작업을 하는 건데…….’라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이 안에 있는 프로그램이 어디 가겠어?’라는 안일한 마음이, 또한 쉽고 편한 것만을 찾으려는 귀찮아하는 게으른 마음이 이렇게 저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집중할 수 있는 마음, 또한 어떠한 곳에서도 성실함을 잃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네요.

이는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어떤 사람의 질문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과는 달리, 넓은 문은 쉽고 안일한 생활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기 편하겠지요. 그렇다면 좁은 문은 어렵고 힘든 생활일까요? 그보다는 옳은 길로 접어드는 문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옳은 길을 잘 선택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가지 못한다고 남도 가지 못하게 하지요. 그 결과 이 길로 걸어가는 사람은 사람들의 반대와 박해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어가기 힘들고 어려운 좁은 문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앞서 안일하고 게으른 마음으로 어제 하루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 전체에 안일하고 게으른 마음이 계속된다면 우리 구원에 있어 큰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일순위에 모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 삶의 안일하고 게으른 마음을 몰아내어야 합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마음, 이러한 마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도록 해 줄 것입니다.

 

미움은 초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불청객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고 괜히 서로 싫어하며 살아간다.(리차드 에드럴)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아이패드. 어제 하루 저의 애물단지였습니다.

사람마다 고유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쌍둥이라 할지라도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고유함으로 인해 사람 각자 각자를 구별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사람의 고유함이 바로 그 사람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남들과 다르다고 부끄러워하고나 사라져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다른 점을 인정하기보다는 공통점만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기준 역시 ‘~~해야 한다’식의 기준을 내세워서 ‘예쁘다, 못생겼다, 아름답다. 보기 싫다’ 식의 말을 합니다. 그 기준이 맞기는 하는 것일까요?

예전에 조선시대의 미인 사진을 우연히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사람들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이상했지요. 그러나 당시에는 남성들의 가슴을 흔들리게 하는 미인이라고 하더군요.

또한 지금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은 늙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 역시 언젠가는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이고, 지금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나의 고유함을 잃지 않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 점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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