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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28 조회수882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Jesus went up to the mountain to pray,
and he spent the night in prayer to God.

When day came, he called his disciples to himself,
and from them he chose Twelve, whom he also named Apostles:
(Lk.6.12)
 
 
제1독서 에페소 2,19-22
복음 루카 6,12-19

인생을 성공하고자 한다면 ‘3P’가 있어야 한답니다. 첫째 P는 Plan(계획)이고, 두 번째 P는 Practice(행동, 실천)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P가 뜻밖입니다. 글쎄 Prayer(기도)라고 하네요. 사실 세상 사람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 P만 있으면 충분히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P역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부족하고 나약함으로 인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고통과 시련의 순간에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에 빠집니다. 계획을 완벽하게 세웠고 이에 대한 행동과 실천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예기치 않은 고통과 시련을 넘어서기에는 인간의 힘이 너무나 미약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신앙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신앙인들조차 일 따로 기도 따로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수험생의 경우, 부모님이 먼저 성당에 나가지 말 것을 권유한답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가 아니라 공부할 때라는 것이지요. 성당에 가서 기도할 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간 다음 열심히 성당에 가서 기도하라고 말한답니다.

그리고 아마 요즘처럼 시험 날짜가 가까워지면서는 신부님들께 안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시겠지요. 저 역시 본당에 있을 때 보면, 평소에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학생들이 수험생 미사를 한다고 하면 구름같이 몰려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가톨릭계 대학에 응시한다고 추천서를 부탁하는 경우도 많았지요. 물론 이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생입니다. 그럴 때면 참 갈등이 많이 생깁니다. 이렇게 단 한 번의 기도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큰 욕심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기도와 우리 삶은 이렇게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렵고 힘들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시길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와 삶은 분리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철저히 기도하셨습니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셨지만,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에는 꼭 기도하셨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당신의 기쁜 소식을 전달할 일꾼인 열두 제자를 뽑기 전, 먼저 하셨던 것은 기도였지요. 그것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잠깐 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공간으로 묘사되는 산에 가시어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나의 기도는 과연 어떠했는지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성당에 있을 때에는 열심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기도하고, 일상 삶 안에서는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아니 그보다도 더 못된 모습을 비추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은 이제 버릴 때입니다.

 

자기의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영웅입니다(헤르만 헤세).




당신은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인가요

여행사진을 뒤지다가 시몬과 타대오성인 벽화를 찾았습니다.

디오에서 공익광고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광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회사에서 상냥한 딸 그러나 집에서는 엄마의 물음에 “아~ 몰라도 돼.”하면서 퉁명스럽게 말을 하지요. 꽃집을 운영하는 엄마는 손님들에게 친절하지만, 집에서는 청소할 때 남편의 발을 툭 치면서 “이것 좀 치워봐.”라고 말합니다. 아들은 친구들과 쾌활하게 지내고 있지만, 아빠의 “이거 하나 먹어봐.”라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자상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아내에게 무거운 짊을 들게 하면서도 빨리 오지 않는다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으로 이러한 멘트가 나옵니다.

“밖에서 보여주는 당신의 좋은 모습, 집안에서도 보여주세요.”

사람들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왜 가족에게는 나쁜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일까요? 이 정도는 이해할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요?

안과 밖이 같은 우리. 특히 가정 안에서 더 큰 사랑을 쏟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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