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사제가 되기 위해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을 때 저는 항상 구석자리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너는 저기서 찌그러져 있어.’라는 식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얼굴을 찌푸리시고, 무엇을 해놓으면 얼추 끝내놓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 그 사람에게 공이 돌아가게 하는 식이었습니다.
하루는 그런 신부님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제가 꿔다놓은 보리자루입니까?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님께서 딱 한 마디 “네가 그렇게 말한 것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휙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당혹스러워 꼼짝 않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신부님께서 제게 느닷없이 물어보셨습니다. “이유를 알았느냐?” 제가 무슨 말씀인가 싶어 눈을 껌벅거리니 그때서야 신부님께서 저를 대한 그간의 당신 행동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신부가 되면 언제나 윗자리에 앉을 기회가 많을 텐데 지금부터 그렇게 자리하는 버릇을 들이면 늘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고,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어 제 마음속에는 그분께서 자리할 여지도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의 자리를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내어주기 위해 애쓰십니다. 더욱이 당신께서 받으실 영광을 아버지 하느님께 돌려 당신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당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달리 말하면 자리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다하시되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당신의 자리에 들어와 바로 서게 하신 것이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리더십을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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