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감곡 성당에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제가 일주일 전부터 강론 준비를 해 오고 있는데 E-mail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 내용이 뭐냐?
감곡성당을 가긴 갔는데 거기가 왜 성모성지인지 모르겠다.
오래 되긴 된것 같고 지붕도 높은데 왜 거기가 성모님 순례지인지 알려 달라~~
4~5분 한테서 이런 mail을 받고 나니 답답하여 다른 강론을 때려치우고 그것에 대해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여기가 왜 성모님순례지인지 잘 모르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음 ~~
창피해서 못 드신 분까지 40분~~
이것 때문에 고백성사를 주면서도 분심이 들어서 분별력을 청했습니다.
준비해온 강론을 해야 합니까?
다시 한 번 순례지임을 밝혀야 합니까?
순례지임을 밝혀라!
이 곳이 성모님순례지일수밖에 없는 이유는 네가지입니다.
몇 가지?
네 가지~~
이곳은 110년 된 곳이며 성모님께 봉헌된 곳입니다.
110년 전 이 장호원 일대에 천주교신자는 단 한명도 없었고 천주교 天자도 들어보지 못했던 곳입니다.
110년 전에 프랑스의 임가밀로 신부님이 선교사로 이곳에 와서 여기에 이 본당을 지은 거예요.
1894년 여주 부엉골로 발령을 받으신 신부님은 그 당시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었으니까 제대로 된 성당을 하나 짓고 싶으셨습니다.
말을 타고 다니다 여주로 가는 길에 강 건너 이쪽을 바라보니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산이 하나 있고 엄청나게 큰 대궐 같은 집이 보이더랍니다.
그 집임자가 山임자였는데 그 주인이 누구냐?
당시 명성왕후의 6촌오빠 충주牧使 민흥식의 집이었는데, 임금이 아니면 100칸이 넘는 집을 지을 수 없었지만 109칸 대궐집에 어떻게 민흥식이 살 수 있었느냐?
임오군란 때 민비가 장호원 땅에 숨어들어온 것을 민흥식이 살려 주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지어준 집이었습니다.
내가 그냥 민비라고 했다가 누가 막 따지는데 내가 민씨인데 민비가 뭐냐고~~
그래서 뭐라고 하냐 했더니 <명성황후> 라고 했습니다.
임가밀로 신부님은 그 자리에 성당을 짓고 싶었으나 민흥식이 무슨 돈이 아쉬워 그 산과 집을 팔겠습니까?
그리고 선교사가 이 산을 살 돈도 없었습니다.
그 임신부의 고향이 어디냐?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태어나신 분이며 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루르드성지에서 기도를 드렸던 성모신심이 깊으신 분이셨습니다.
신부님은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성모님께 청했습니다.
임가밀로 신부님의 특기가 뭐냐? 기적의 패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담 모퉁이마다 성모님 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성모어머니, 저 산과 저 집을 주신다면 그곳에 성당을 세워 주보성인을 ‘매괴의 어머니’라고 하고 저는 어머니의 미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매괴는 중국의 찔레꽃을 그렇게 부르며 한국에서는 매괴의 묵주기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기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을미사변이 일어났고 일본의 자객들이 민비를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으며 이때 장호원 일대의 의병과 적군이 싸우다 109칸 집이 불에 타게 되고 22칸만 남습니다.
민흥식은 백그라운드가 없어지자 역적으로 몰려 끌려가게 되며 그렇게 되자 자신의 식솔들에게 “저 산과 저 집을 팔아치워라!”
그 때 6만평의 땅을 얼마에 샀느냐?
단돈 199달러, 환산하면 20만윈이 안 되는 돈으로 샀습니다.
이 땅은 성모님께서 거저 주신 겁니다.
임신부님은 성모님과 약속하신 보답으로 불타다 남은 20칸을 성당으로 썼습니다.
임신부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천주교신자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1958년까지 있었던 이 성당은 허물어지고 없습니다.
당시 미국신부님들이 오셨는데 미국은 역사가 없는 나라이고, 그들의 사고방식이 실용주의였으며 미국적사고방식인 실용주의는 편리한 것을 추구했기에 성당을 헐어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아름다운 성당을 복원해야 합니다.
1920년까지 신자수가 1000여명이 넘자 임신부님은 이제야 제대로 된 성당을 짓고 싶어 하셨습니다.
1000여명의 신자들은 저마다 곡괭이, 삽을 들고 나와 돌산을 캐어 3년에 걸쳐 이 터를 닦고 7년에 걸쳐 성당을 지었습니다.
1920년에 시작된 공사는 1930년에 가서야 축성이 된 성당으로 지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명동성당과 똑같이 지으려고 했으나 여주에서 돌을 캐어 오다가 일본사람들한테 돌을 빼앗기는 바람에 지금의 'small size'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종탑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14.35m입니다.
성모님 순례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 애초부터 성모님 순례지로 봉헌된 땅입니다.
이곳은 110년전부터 봉헌된 성모님께서 주신 성당입니다.
두 번째, 110년 동안 성모님과 관련된 수많은 기적과 신비가 있는 성당입니다.
일본사람들이 대동아전쟁이 터지자 총, 칼을 만들 쇠가 부족하다고 밥그릇이고 뭐고 숟가락까지 다 빼앗아 갔지요.
그 때 종탑에 무거운 종 세 개가 달려 있었는데 마리아종(도), 소화데레사종(레), 벨라뎃따종(미) 입니다.
벨라뎃따 종이 가운데 있었고 종 세 개를 양손에 끼고 치면 도, 미, 레♬ ~~ 도, 미, 레~~~♬
이렇게 아름다운 종소리가 사방 50리 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일본군들은 억지로 이 종을 토적질을 하여 청주로 끌고 가 용광로에 집어 넣고 불을 땠는데 다른 것은 다 쇳물에 녹았고 용광로가 터질 정도로 불을 때었지만 이 종만은 녹지 않았습니다.
이 종을 땅속에 묻어 놓은 것을 감곡신자가 해방 후 여기 저기 옮겨다니다가 금이 가고 많이 훼손 되었으며 미사 전후, 삼종기도 때 울리는 종소리는 그 중 덜 깨어진 벨라뎃따 종으로 울리는 겁니다.
언젠가 깨어진 소화데레사종, 마리아종도 복원될 것입니다.
지금 그 종은 박물관 2층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한달 전에 루르드에서 신부님이 오셔서 인터뷰를 했는데 저 종을 보여주면서 이 종을 다시 복원할 수 있겠느냐? 했더니 그 집안에서 똑같은 기술로 그 손주의 손주가 종을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신부님, 언제라도 연락 하십시오.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용광로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가 터지지 않은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하느님의 역사를 보여 주신 겁니다.
1940년 일제말기 성모광장에 일본 귀신 섬기는 신사를 세우고자 신자들을 끌어다가 터를 닦는 것이었습니다.
임神父가 보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임神父의 특기가 뭡니까?
신부님은 일본군 몰래 땅을 파고 기적의 패를 묻고 기도드렸습니다.
<성모님, 이것 말이 안 되지요! 어머니가 계신 곳에 귀신을 모시다니요~~어머니께서 직접 나서셔서 이곳에 나무때기 하나도 박지 못하세 해 주십시오!>
공사를 시작하고 콘크리트 가다(틀)을 짜려고 목수들이 눈을 땡그랗게 뜨고 못질을 하려 했지만 못대가리를 박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못을 피해 손등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목수들은 한평생 못을 박아왔기에 눈을 감고도 박을 수 있었지만 결국 못질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때는 마른하늘에 벼락이 쳐서 바위가 ‘꽝!’ 하는 소리에 혼비백산을 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 산은 白頭대간의 줄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곰이 ‘어흥~~’ 하고, 아니 호랑이가 ‘어~흥’ 하고 나타나면 목수들이 연장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아무튼 요런 조런~~ 이런 저런~~ 이유로 2년 동안 나무때기 하나 박지 못하고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고 일본군들은 자기 나라로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信者가 아닌 사람도 ‘저 산은 성모님께서 살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고 말했고
그 때부터 <성모광장> 이라고 불렸습니다.
1913년 성체대회가 열렸고 해방 후 2년 1947년까지 임가밀로 신부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본당신부님으로 계셨으며 51년 동안 사목을 하셨습니다.
아, 그때 신자들 얼마나 지겨웠을까요?
본당신부 보기 싫으면 2년만 참자! 이런 희망도 없고~~
본당신부도 신자 보기 싫으면 ‘6개월만 참으면 이동이다!’
그때는 주저앉으면 30년은 기본이야~~
1947년 임가밀로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6.25를 맞이했는데 그때 본당 사제는 이북에 끌려가 순교하시고 수도자도 순교하셨습니다.
종교의 암흑시대였지요.
이때 장호원일대 공산당들이 성당 안에 들어와 인민군 숙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들이 이 성당을 사용하면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어느 날 인민군들이 회의 중에 바람소리가 세차게 나서 천장을 쳐다보았더니 성령강림 때처럼 불덩어리 세 개가 천장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인민군들을 오줌을 싸면서(보지는 못했음^^) 도망을 갔습니다.
또 어떤 날은 잠을 자고 있는데 “꽝!” 소리가 나서 ‘국군이 대포를 쏘나보다!’ 하고 팬티만 걸치고 뛰어나가려 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성당 뒤 네 번째 기둥에 돌로 된 성수대가 양쪽에 있지요? 그것이 약 80kg인데 누가 밀지도 않았는데 두 개가 동시에 자빠지면서 마루짱이 깨지는 소리였습니다.
인민군들이 보면 불길한 일이요~~
우리 쪽에서 보면 무지 꼬~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다 언제 철수를 했냐~~
인민군들이 성당 안에 들어와 제일 기분이 나쁜 것은 웬 여편네가 꼭대기에 올라 앉아 남자들을 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저것이 조화를 부리나보다.... 오늘 작살을 내야겠다!’
그래서 성당 2층 성가대석에서 성모상을 향해 정조준을 하여 ‘타~앙!’ 하고 한 방을 당겼습니다.
성모상은 석고로 만들어졌지요?
여러분, 성모상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구멍만 ‘뻥’ 하고 났습니다.
왼쪽 가슴, 옆구리, 허벅지에 구멍만 나자 다시 네 방을 더 당겼습니다.
그 다음에 따발총을 비 오듯이 퍼부었지만 총알은 성모님 앞에서 빗살처럼 옆으로 퍼지면서 성모님 뒤쪽에 새카맣게 총알이 가서 박히고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민군은 뚜껑이 열렸겠지요?
총알에도 안 깨어지고 따발총은 피해 가고~~
인민군은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 망치를 들고 성모님의 얼굴을 깨려고 있는 힘을 다해 내려치려고 하는 순간 성모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인민군은 망치를 놓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저 성당 안에 귀신이 있다고 하얗게 질려서 도망갔습니다.
그 이후로 어느 인민군 한 사람 성당 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인민군들이 이북으로 퇴각하면서 동네청년들을 공산군으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너, 나와!”
“내가 미쳤냐, 나가게~~”
성당 안에 피신해 있던 수십 명의 청년들이 그 안에 있는지 뻔히 알면서 결국 단 한명도 끌고 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7~80대의 노인(그때 청년들)이 그 일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총알구멍은 모두 일곱 개입니다.
그래서 성모칠고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총알은 뱅뱅 돌아서 나가기에 뒤로 갈수록 구멍이 커지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성모님 뒤에는 총구멍이 없습니다.
성모님의 아름다움을 전혀 손상하지 않으시면서 총알 일곱 개를 몸에 끌어안으신 채 110년 동안 한 번도 그 자리를 옮기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모님께 기도하여 치유 받고 내적상처, 미움, 죄의식....등을 치유 받습니다.
의학적으로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인이 기도하고 난 후 아기를 갖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매괴의 성모님 상본으로도 많은 치유가 일어납니다.
성모님의 액자 앞에서 기도하고 폐암 말기 환자가 복수가 빠지면서 암이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여러분 뜻대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매괴의 성모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곳은 성모님께서 살아 계신 곳이며 한국에 이런 순례지가 있다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순례지가 된 두 번째 이유: 110년동안 성모님과 관련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 곳입니다.
세 번째 이유: 110년 동안 이 성모님 품에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낳은 곳입니다.
성모님께서 사제는 내가 가장 사랑하며 하늘에 박아놓은 별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를 가도 성모님 순례지에는 사제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은총의 빛이 강한 만큼 어두움도 깊은 곳입니다.
햇빛이 강한 그 뒤에 그림자도 짙지요?
일년에 3~4만의 순례자가 말씀을 듣고 치유 받고 영적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가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이 강한 만큼 어둠도 깊은 곳입니다.
냉담에 빠진 사람, 마귀가 안 건듭니다.
회개하고 하느님 앞에 무릎 꿇고~~
꾸르실료 나오고 성당에 다니려고 하면 없던 일이 생기고 막 헷갈리게 합니다.
프랑스에서 오신 신부님도 “맞습니다. 루르드 성지도 어둠이 짙은 곳입니다!”
그러셨어요.
마귀가 사제를 망가뜨리고. 사제와 신자사이를 이간질하고~·
소문을 더럽게 나게 만들고~~ 그럽니다.
전 세계 순례지는 빛이 강한만큼 어둠도 그만큼 강합니다.
작년 10월에 다른 신부님들 어디 가시고 나 혼자 여기 왔다~~갔다~~하는데 멋있는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오더니 그 차안에서 뚱뚱한 스님이 내렸어요.
머리가 햇빛에 반짝거렸는데 사제관으로 올라오더니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신부님이십니까?”
“맞습니다.”
“차 한잔 주시겠습니까?”
“들어오십시오.”
그 스님 “참 아깝게 되었습니다.”
“뭐가 아깝습니까?”
“이 곳에 절이 들어섰으면 유명한 사찰이 되었을 것이고 중이 수천명은 나왔을 텐데...”
사찰은 안 들어섰지만 대신 서양 중이 많이 배출되었지요?^^
또 이곳 감곡은 氣가 무지 센 곳입니다.
사제도 수도자도 신자도 기가 세지 않으면 못 견디는 곳입니다.
감곡성당은 그리 높은 곳에 위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여주 쪽으로는 여주시내까지는 보이지 않아도 그 가는 길이 보입니다.
또 멀리 충주 가는 방향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노을을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노을이 지는 반대쪽에서 보면 어둡게 보이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다리 건너 신자들이 하나같이 감곡 매산은 해가 질 때 이 산만큼은 활활 불이 붙은듯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이 매산을 바라보며 묵주신공을 드린다고 합니다.
노을 지는 산을 바라보며 제가 지은 제일 첫 번째 詩
<아, 노을 죽인다!>
순례지가 된 이유 네 번째 : 빛이 강한 만큼 어둠도 강하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여기는 신자가 와서 머물기만 해도 치유가 됩니다.
매괴의 성모님은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이십니다.
이곳이 순례지가 된 네가지 이유
1) 애초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땅이다.
2) 110년 동안 성모님과 관련된 수많은 기적과 신비가 있는 곳이다.
3)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나온 곳이다.
이곳에서 약 150여명의 신부님과 수녀님이 배출되었습니다.
4) 은총이 강한 만큼 어둠도 강한 곳이다.
신앙이 흔들릴 때마다 이곳에 와서 기도하고 봉헌하십시오.
치유의 기적이 세게 일어나는 곳입니다.
한국에 이런 순례성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이곳은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말씀을 통해 치유 받고 이렇게 아름다운 성지에서 은총 받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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