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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 예찬 - 10.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29 조회수33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1.10.29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로마11,1ㄴ-2ㄱ.11-12.25-29 루카14,1.7-11

 

 

겸손 예찬

 

 

겸손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겸손한 사람이 매력적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궁극의 목표 역시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늘 봐도 좋고 새롭고 보고 싶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느님을 닮을수록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나 깨나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겸손합니다.

 

늘 인용하지만

흙(humus)에 어원을 둔 겸손(humilitas)이요 사람(homo)입니다.

흙 같은 겸손해야 비로소 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고향에 대한, 흙에 대한 향수는 겸손의 본능적 표현입니다.

늘 봐도 좋고 편안하고 자연스런 흙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11,29).

 

온유할 때 겸손이요 겸손할 때 온유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저절로 선사되는 안식입니다.

 

얼마 전 주교님이 맛있는 한우를 사들고 방문하셨습니다.

주고받은 일화가 재미있습니다.

“여기 수사님들은 고기를 잘 먹지 않습니다.”

거주 신부님의 말에 즉시 제가 답했습니다.

“이런 부드러운 고기는 좋아합니다.”

대답하자 거주 신부님은 원장님이 처음으로 조크를 했다고 환호했습니다.

정말 오랜 만에 먹어 본 참 부드럽고 맛좋은 한우였습니다.

 

즉시 연상된 게 부드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아, 부드러운 고기를 좋아하듯

부드럽고 따뜻한 겸손한 마음을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성무일도 독서 시 로마서 말씀도 생각납니다.

“서로 한 마음이 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십시오.

그리고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로마12,16).

 

자기를 모르는 어리석고 교만한 사람이 잘난 체 하거나 있는 체 하거나 아는 체 하지

겸손한 사람은 익어갈 수록 고개 숙이는 벼이삭들처럼

결코 잘난 체 하지도, 있는 체 하지도, 아는 체 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겸손한 분이십니다.

아니 겸손자체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닮아갈수록 침묵에 겸손입니다.

 

수확이 끝난 배 밭의 배나무들 역시 하느님의 겸손을 반영합니다.

일 년 내내 끊임없이 일하여 그 많은 수확을 내고도

묵묵히 서있는 배나무들에게서 하느님의 침묵과 겸손을 배웁니다.

 

겸손한 사람은 주어진 ‘제자리’에 충실합니다.

제자리에 충실할수록 자존감 높아 겸손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제분수를 알아 제자리에 충실할 때 겸손이요 행복입니다.

이런 겸손한 이들은 비교하지 않기에 열등감이나 우월감도 없고 비겁하거나 비굴하지도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삶에 행복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가 진실이요 겸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위장도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모를, 소유를, 지위를 보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더도 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일 뿐입니다.

 

이런 겸손이 몸과 마음에 배어있을 때 누구 앞에서 쫄거나 위축되지 않고 자연스럽고 자유롭습니다.

 

이런 겸손한 이들은 잔치에 초대 받으면 윗자리보다는 끝자리를 선호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어‘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는 겸손한 사람들은 저절로 높아집니다.

 

겸손한 사람은 시야가 넓어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봅니다.

자기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 안에서 나를 봅니다.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안에 있는 상대적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하느님은 물론 이웃을 널리 깊게 알아 갈수록,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깊이 통찰해 갈수록 겸손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그 모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새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를 깊이 통찰한 사도 바오로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알아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습니다.

겸손한 이들은 편협한 시야로 흑백 논리의 이분법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다각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생(win-win)의 삶을 추구합니다.

 

겸손도 능력입니다.

겸손으로 표현되는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삶에 항구함으로 하느님을 닮아갈 때마음에 축적된 겸손은 저절로 흘러나오기 마련입니다.

몸이 겸손의 향기를 발산합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를 주님을 닮은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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