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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예수님 태운 당나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30 조회수611 추천수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연중 제 31 주일 - 예수님 태운 당나귀

 


 

신부와 건달의 공통점이 세 개 있답니다.

1. 자기 나와바리가 있다.

2. 검은 옷을 입고 몰려다닌다.

3. 밥을 먹어도 돈을 안 낸다.

4. 아무에게나 반말한다.

 

웃기지만 일면 씁쓸한 농담들입니다. 사제가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신자들이 사제를 존경하는 분위기가 있어야합니다. 사제가 존경받지 못하면 누구도 그 길로 가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농담들은 또한 아무 공감대 없이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씁쓸하기도 한 것입니다.

 

친구 신부가 이전에 저를 부를 때, ‘어이~ 보좌급!’으로 불러서 ‘도대체 본당신부가 무얼까?’하는 기대감도 더 컸었습니다.

저는 본당신부로 이제 두 달 살았습니다. 두 달 살아보니 저런 농담들이 왜 나오는지 잘 알겠습니다. 정말 본당신부는 보좌급 신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할머니들은 그저 손만 잡아드려도 일 년치 용돈을 한꺼번에 받은 양 기뻐하시고 등은 한 번 쓰다듬어 드리면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십니다. 어르신들이 그렇게 굽실거리니 자신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어제는 유학하다 잠깐 쉬러 온 신부와 함께 저에게 서품을 주시고 또 유학도 내보내셨지만 지금은 스스로 은퇴하시어 산골 작은 공소에서 성당을 짓고 사목을 하고 계시는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을 뵙고 왔습니다.

맛있는 오리 샤브샤브를 사 주시고 굳이 당신께서 돈을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당신 본당에서 만드시는 쌍화차를 주시고, 또 그 쌍화차를 만드는 곳을 구경시켜 주시고 하나씩 선물로도 주셨습니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열심히 쌍화차를 만들고 있는 신자들에게, “이분이 이제 우리 쌍화차 우수고객이 될 거예요.”라고 저를 소개했습니다. 주교님은 성당 빚이 많아 빚을 갚기 위해 쌍화차를 만들어 팔고 계셨고 저에게 사달라고 부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다른 친구신부는 다시 유학을 나가야 해서 별 볼일 없지만, 제가 본당신부란 것 하나만으로 주교님은 파는 사람 입장이 되어 낮아지시고 저는 사는 사람 입장이 되어 귀빈 대접을 받았던 것입니다.

교구장 주교님이셨지만 직분을 빨리 물려주시고 물러나시어 빚 있는 작은 공소에서 사목하시는 주교님의 겸손한 모습에도 감동을 받았지만, 한 본당의 신부가 갖는 위치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달 본당 신부 했는데도 이정도니 조금 더 오래하게 되면 어떻게 변하게 될 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주위환경이 사제가 오늘 말씀 그대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보이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사실 긴 수단을 입고 다니고, 어딜 가나 윗자리는 신부님 자리이고, 식사하러 가면 항상 중앙에 앉고, 밥 먹고 돈을 거의 안 내고, 먼저 인사하는 법이 거의 없고, 신자들이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많습니다.

 

금요일 날 저희 성당에서 연령회장님을 비롯하여 성당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던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성당에 와서 계속 안수를 드렸던 분이고 공로도 많은 분이라 꼭 성당에서 장례를 드려드리고 싶었지만 장례를 주일날 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을 했었습니다.

어른 신부님들에게서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에 장례미사는 전례에 맞지 않는다고 배웠었습니다. 또 다른 몇 분의 선배 신부님들에게 여쭈어보니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어기면 선례가 된다고 주일날 장례를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주일날 장례미사를 해도 되는지를 찾아보니, 대축일급 미사를 제외하고는 주일에도 되는 것을 넘어서서 부활과 장례의 의미가 가장 적합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교회는 오히려 주일에 장례미사 하는 것을 장려를 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도 지금까지 주일에 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었고 또 많은 신부님들이 그렇게 아시고 계신 것일까요?

물론 주일에 너무 바쁘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하겠지만, 어쩌면 이런 것이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모습은 아닐까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등에 태우고 다니는 당나귀이고 사람들이 당나귀에게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등 위에 타고계신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께 환호하고 있다고 아무리 묵상해도, 다리 밑에는 그들이 깔아놓은 나뭇가지와 옷들이 있고, 위에 있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니 자신이 예수님인양 행동하기가 너무 쉬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에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에서 비롯한 교만이 사제들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높아지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느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보좌를 할 때 주임신부님과 어떤 수녀원에 방문했습니다. 수련자들이 사는 집은 매우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선물로 과일을 몇 박스 사서 차에 싣고 갔었는데 신부님은 길이 너무 가파르니 수련 수녀들보고 내려와서 과일을 들고 올라가도록 차를 중간에 대 놓고 걸어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쁘고 가녀린 수련자들이 무거운 과일박스를 들고 가파른 길을 오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들과 함께 내려가 그들을 차에 태우고 수련소 문 앞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웅이 되었지만 결국 주임신부님만 나쁜 사람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올라올 수도 있었는데 괜한 고생만 시키려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일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하면 윗사람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와는 하느님과 같아진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죄를 지었지만, 아담은 하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죄를 지었습니다. 당나귀가 일어서면 등 위에 타고계신 예수님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도 사라집니다.

 

이는 비단 사제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이 본당 신부님의 험담을 가족들 앞에서 한다면, 혹은 아내가 자녀들 앞에서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권위를 세워주지 않는다면 가정의 질서는 무너집니다. 질서가 무너진 가정은 절대로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질서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위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에서 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신께 영광을 주시는 아버지의 뜻에만 순종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께만 잘 보이려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죽기까지 아버지께만 잘 보이려 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같은 분이 되셨습니다. 사람에게로부터 오는 것은 공허하게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영광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승이시고 주님이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는 종의 모습을 보였음을 항상 마음에 새기기 잊지 말아야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움직이는 당나귀에 지나지 않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풍수지리 책을 읽으니 집보다 집 주위 나무가 더 크면 하늘에서 오는 복을 나무가 다 받아먹어 집에 우환이 들끓는다고 합니다. 복은 위로부터 내리는 것이고 내 교만이 너무 높아져서 나에게 내릴 그 복을 모두 빼앗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여 임하소서>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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