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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님을 모시고 살아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30 조회수414 추천수11 반대(0) 신고

 

   반신부의 복음 묵상
               연중 31주일 2011.10.30

 
 




(마태23,1-12 ;말라기1,14-2,8-10; 1데살로니카2,7-9.13)

         
      주님을 모시고 살아라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오는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에 대한 섬김을 묵상하는 가운데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섬기러 오신 주님’을 만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오랜만에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들 집에 몇 일 머물다 보니 당신이 찬밥신세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생고생하며 아들 교육시켜서 장가들여 놓았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런 꼴을 당하고 있지 말고 돌아가자 마음먹곤 메모 한 장을 남겨놓았습니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집안에서 누가 가장 귀한 대접을 받나 보니까 첫 번째가 손주녀석이었습니다. 두 번째가 며느리였고 세 번째가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였고요. 다섯 번째가 집안에 있는 고양이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여섯 번째인 겁니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모를 비롯하여 어르신을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 반대입니다. 데리고 살아야 할 아이들은 모시고 살고, 모시고 살아야 할 어른은 데리고 살아갑니다. 자식을 하늘같이 떠 바치고 사니까 기본이 서지 않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모심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고생시키려면 왜 낳았냐고 항의하기도 합니다. 시대가 변하긴 변한 모양입니다.

 

이사야 1,2-3에보면 “자식이라 기르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 구나”(내가 아들들을 기르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하시는 주 하느님의 한탄의 소리가 기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데 우리는 그 사랑을 잊고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부모에게 권고합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에페6,4) 아이의 기를 꺾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가르침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는 모든 이를 채찍질 하신다”(히브12,6)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에페5,1). 아이들을 무조건 떠바치고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과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을 배우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1디모5,4).

 

집회서에서는 자녀의 본분을 말합니다. “아비를 공경하는 것은 자기 죄를 벗는 것이며 어미를 공경하는 것은 보화를 쌓아 올리는 것이다. …아비를 잘 섬긴 공은 잊혀지지 않으리니 네 죄는 용서 받고 새 삶을 이룰 것이다.

네가 역경에 처했을 때 주님께서는 너의 효도를 기억하시겠고 네 죄는 얼음이 햇볕에 녹듯이 스러질 것이다. 자기 아비를 저버리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어미를 노엽게 하는 것은 주님의 저주를 부르는 것이다(집회3,1-16). 그러므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만큼 주님의 견책과 훈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꾸지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마태23,3) 말과 행동의 일치가 삶의 모범이요, 표양인데 그렇지 못하였으니 꾸지람을 듣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자녀나 이웃에게도 이런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은 당대에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약점은 자신들이 스스로 스승이요 지도자로 행세한 것입니다. 남들이 그렇게 대우하기도 했지만 본인들이 그렇게 자처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참된 어른, 우주만물을 내신 주 하느님을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남들이 자기를 받들어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교만으로 가득찼습니다. 스스로 선생이 되려는 것이 병입니다.

 

우리도 같은 잘못을 범할까 두렵습니다. 너무 모심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교만해질까 걱정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23,11-12).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삶을 통해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립2,6-7).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춰주시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신학생이 강아지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처음부터 강아지를 싫어한 것은 아닙니다. 본당 신부님이 강아지를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신학생도 강아지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당신부님 마음에 드는 방법 중의 하나가 강아지를 잘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속이 상했습니다. 신부님이 외출하고 돌아오셔서 하는 말씀이 마음에 자꾸 걸렸습니다. “신학생, 강아지 밥 줬나?”, 매번 그러셨습니다. “신학생, 밥 먹었나?” 하고 먼저 물어보시면 안 되나요? 아! 나는 강아지만도 못한 신학생인가? 화가 났습니다. 이제 신부님이 안 볼 때 강아지를 쿡쿡 쥐어박았습니다.

 

강아지는 강아지 입니다. 짐승은 짐승입니다. 어떤 이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하느님께서 당신의 숨을 불어 넣어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된 한 사람 한 사람은 피조물 중 가장 귀한 하느님의 작품이요, 하느님의 빛나는 존재입니다. 강아지는 강아지로써 귀염 받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무리 영특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모습대로 지어진 인간을 뛰어넘는 존엄함을 지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지배하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1,28) 모든 짐승을 부려라! 하셨습니다.

강아지는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사는 것입니다. 강아지를 귀여워하고 좋아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사람을 먼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강아지에 매여서 정작 해야 할 바를 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소홀할 수 있다면 그는 강아지를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먼저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더더욱 주님은 모시고 사는 것이지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1요한3,1) 하느님을 올바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로마12,11).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하셨습니다. 주님과 세상 것을 함께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삶의 첫 자리를 주님께 내어드리고 있는지?

제일 좋은 시간을 선택해서 기도하시는지요? 새벽 5시에 등산을 하고 운동을 하려고 일찍 일어나기는 하지만 기도하러 새벽 5시에 일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나서 남는 시간에 기도한다면, 그렇게 하고서 주님을 섬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나서 주님께 바치면서 주님께 효도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모든 것에 앞서서 주님을 챙기십시오.

 

 

그리고 드릴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12,1). “주님, 당신께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흠 없는 길에 뜻을 두리니 언제 저에게 오시렵니까?”(시편 100,2). 무엇을 하든 주님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끝맺음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참으로 주님을 모시는 사람,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아쉬울 때만 필요에 의해서 찾는 주님이 아니시길 바랍니다. 모시고 살아야 할 분을 확실히 모시고, 데리고 사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좋을 때는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어려울 때는 투덜대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불평하고 투덜대기 전에 먼저 주님을 제대로 모심으로써 은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알림마당
 
    창5동성당 1일 대피정 (church.catholic.or.kr/chang5 )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때, 곳 : 11월 7일(월) 오전 10시-오후 5시, 대성당
 주제 : 사랑의 하느님
 강사 : 반영억 라파엘신부님(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성당)
 회비 : 3,000원(점심 김밥 제공)
 
 ※ 누구든지 참석하셔서 강의, 미사와 안수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cafe.daum.net/rara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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