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때 독일의 주교들은 전장으로 떠나는 젊은 독일 병사들 앞에서 '하느님께서 이 젊은이들과 함께 하시어 그들의 목숨을 지켜주시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라'는 기도를 바쳤다.
한편 미국의 주교들은 마찬가지로 젊은 미국 병사들 앞에서 같은 내용의 기도를 바쳤다.
하느님께서 아마 이런 푸념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느님, 맙소사... 나보고 어쩌라고..."
전쟁의 결과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 주교들의 기도가 들어진 탓인가? 하느님은 미국 주교들의 손을 들어주셨을까?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 바쳐지는 많은 기도의 내용이 위와 마찬가지로 도대체 하느님께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내 남편 제때 승진시켜주시고 내 아들은 이번 대학 입시에 꼭 붙게 해 주시고 내 딸은 바이올린 경연대회에서 일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다른 남편을 승진에서 탈락 시켜주시고 내 아들의 경쟁자들을 떨어뜨려 주시고 내 딸의 경쟁자는 물리쳐 주십시요'라는 기도와 별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기도의 내용들이 나와 내 가족의 승리에만 너무 집착되어 있다. 물론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기복적인 요소가 전혀 배제될 수는 없겠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이 부뚜막에 정한수 떠놓고 손금이 닳토록 빌었던 옛날 우리들 할머니들의 민간 신앙과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한 겨울에도 얼음을 깬 물로 목욕 제계하고 살을 에이는 바람 속에서 기도를 바치던 전설의 고향 속의 할머니들의 정성과 희생에는 비교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마태오 복음 7장 7절(청하시오,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찾으시오, 얻을 것입니다. 두드리시오, 여러분에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을 지나치게 자기 편한데로만 받아들이고 다른 이에게 적어도 간접적으로 피해가 가는 일이 분명한데도 손금이 닳도록 나의 승리만을 위해 구하고 찾고 두리드고 있다.
나는 우리들이 하느님께 잘 구해야 하고 잘 청해야 하고 잘 두드려야 받고, 얻고, 그리고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릴까? 성서의 다음 구절에 그 해답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요.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구하십시요.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마태 6,25.33)
이제 우리가 기도를 통해 구하고 찾고 두드릴 것이 분명해 졌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뜻을 구하고 찾고 하느님 나라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의 승리, 즉 먹고 마시고 살아갈 것, 그리고 몸에 걸칠 것은 이 아버지의 뜻이 구해 질때 저절로 받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기도하는 법을 여쭈었을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의 핵심 내용 역시 아버지의 뜻이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 요구하시는 바를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 6, 10)
죽음 앞에선 예수님의 기도 역시 명백하게 이를 뒷바침해 준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요.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마태 26,39) 자신의 죽음 앞에서조차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찾고 따르는 것이었다.
우리도 주님을 닮아 보자. 유아기의 어린 아이처럼 부모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요구만을 쉬지 않고 말하는 기도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제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구하지 위해, 아버지의 메세지를 듣기 위해 조용히 침묵 중에 앉도록 하자.
"NON MEA, SED TUA"(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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