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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31 조회수887 추천수1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when you hold a banquet,
invite the poor, the crippled, the lame, the blind;
blessed indeed will you be because of their inability to repay you.
For you will be repaid at the resurrection of the righteous.
(Lk.14.13-14)
 
 
제1독서 로마 11,29-36
복음 루카 14,12-14

제가 아침 운동을 하는 도로에서 항상 만나는 형제님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도로를 청소하시는 환경미화원 형제님이십니다. 이 형제님은 추워도 또 반대로 더워도 매번 그 시간이면 도로를 청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가 지나가며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언제나 밝게 웃으시며 인사를 받아주시지요.

너무나 이른 새벽부터 일하시기에 짜증을 낼 수도 있을 텐데, 인사를 받아주시는 그 모습에 감명을 받습니다. 또한 이렇게 궂은일을 한다고 불평불만에 쌓일 수도 있을 텐데, 항상 웃으시는 모습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제 쇼프로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백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인기 가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그들과 함께 하는 뒤에서 열심히 춤추는 백댄서들이 없다면 어떨까 싶더군요. 백댄서들을 통해 이 가수가 돋보이기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춰도, 정작 무대에서 박수를 받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뿐입니다.

이처럼 궂은일, 힘든일을 하시는 분들이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의 일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렵다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거부하려고만 한다면 어떨까요?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큰 불편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있는 자리에 대한 불평불만은 나와 이웃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세상 전체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있는 곳에서 기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작 백 년도 못되는 짧은 삶을 살면서 괴로워하고 후회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깝습니까? 또한 삶의 대부분을 우울해하고 괴로워한다면, 내게 주신 하느님께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제 세상의 기준으로 행복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보다는 지금의 자리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얼마나 기쁘게 잘 지내는 지를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상의 기준으로 힘 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초대하라고 하지 않지요. 이러한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사람,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때 행복해질 것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해주십니다.

내 자신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의 기준만을 앞세운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기준을 앞세울 때에는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이란 서로 그리워하는 것, 서로 마주 보는 것 그리고 서로 자신을 주는 것이다(칼 힐티).




매일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것

충주호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을 만끽하고 왔어요.

저는 체중이 좀 많이 나갑니다. 그러다보니 식사를 하는데 신경을 꽤 쓰게 되고, 식사를 조금씩 줄여서 합니다. 그런데 가끔 외식을 하다보면 폭식을 하게 되지요. 술도 한두 잔 들어가면 생각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평소 한 끼 식사량의 몇 배를 외식때 하곤 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전날 평소의 세 배 양을 먹었으니까 다음 날은 쫄쫄 굶어도 상관없을까요? 아닙니다. 때가 되면 또 배가 고파지고 그래서 또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기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도를 한꺼번에 많이 했다고 해서 한동안 기도하지 않아도 될까요? 아닙니다. 기도 역시 꾸준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을 종종 만납니다.

“신부님, 제가 그래도 그동안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이제 좀 쉬려고요.”

“신부님, 저처럼 열심히 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조금 쉬었다 해도 하느님께서 이해하실꺼에요.”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 인간이 하는 기도, 봉사, 희생은 아무리 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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