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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비감각의 수련과 치유 - 10.3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31 조회수406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1.10.31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로마11,29-36 루카14,12-14

 

 

신비감각의 수련과 치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물건처럼 사고 팔립니다.

이 물화(物化)의 시대에

무엇보다 긴요한 게 ‘일상의 복원’이요 ‘신비감각의 복원’입니다.

 

무뎌져가는 신비감각보다 큰 재앙은 없습니다.

새삼 신비감각을 살리고 키우는

신비감각의 수련이 절실한 시대임을 깨닫습니다.

신비감각의 수련과 치유를 위해

매일 평생 끊임없이 공동전례 기도를 바치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오늘은 ‘신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세상에 신비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의 신비, 생명의 신비, 인간의 신비, 몸의 신비, 마음의 신비,

사랑의 신비, 믿음의 신비,…하느님의 신비 끝이 없습니다.

 

온통 신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모두가 신비라는 것은 모두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 같지만 대부분 모르는, 극히 작은 부분만 아는 우리들입니다.

 

이 신비 앞에 설 때 저절로 경외와 겸손입니다.

신비 중의 신비가, 모든 신비의 열쇄가 바로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모든 신비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에 이르고 하느님의 신비를 깨달아 가면서

인간의 신비, 세상의 신비를 깨달아가게 됩니다.

 

신비의 깨달음에 따르는 놀라움이요 새로움이며

더불어 살아나는 신비감각에 영적 감수성입니다.

 

이런 신비가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의무입니다.

신비가가 될 때

비로소 물화의 세상 속에서도 본연의 참 나의 자유인으로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하느님 신비 묵상이 참 고무적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깨닫고 감격한

사도 바오로의 고백이 고무적입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는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있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신비를 깨달아 갈 때

저절로 겸손과 지혜요 세상의 신비도 깨달아 알아 가게 됩니다.

 

세상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나와

하느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향하여 있다는 이 말씀이 모든 신비의 답입니다.

 

하느님 안에 모든 경계의 벽은 사라지고

모두가 하느님의 무상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임을 깨닫습니다.

사람 눈에

‘잘 난이 못난이’, ‘있는 이 없는 이’, ‘높은 이 낮은 이’이지

하느님 눈에는

모두의 벽이 철폐되고 모두가 당신 안에 사랑스런 피조물들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신비를 깨달아 알 때 하느님을 닮아

자비와 연민이요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입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해 각별한 사랑을 쏟습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 신비에 정통한 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입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의 신비요

특히 가난한 이들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주님은 유유상종, 이해관계를 떠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라 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져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이런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하느님을 돕는 것이며 하느님께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이런 가난한 이들을 도울 때

신비감각도 살아나며 하느님을 닮는 참 나도 회복됩니다.

이런 무욕의 순수한 나눔의 행복은

그대로 하느님의 선물이요 아무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래야 텅 빈 허무가 아닌 텅 빈 충만의 행복을 삽니다.

이런 이들이 진짜 하느님의 사랑에, 신비에 정통한 신비가입니다.

기도 많이 해서 신비가가 아니라 사랑이 많아 신비가입니다.

 

세상 한 복판에서

이런 익명의 신비가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치유를 위해,

18번째의 희생자(자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숱한 의인들의 후원을 통해 와락 공동체를 만든

정신과 의사 정 신혜 박사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와락’ 안아 줄 수 있는

환대와 보살핌을 강조한다는 뜻에서 와락 공동체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다음 그의 진정성 담긴 고백이 그대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치유의 시작이자 핵심은 일상의 기본인 밥을 먹는 것이다.

‘와락’에서는 따뜻하고 정갈한 밥을 늘 공급할 것이다.

엄마가 따뜻한 밥을 해주듯이

기본적인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신비는 사람의 신비요, 사람의 신비는 ‘몸의 신비’이전에

‘마음의 신비’입니다.

참 약한 마음에 마음의 상처와 좌절이 자살의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도대체 어느 동물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합니까?

그토록 사람 마음이 약하고 섬세하여 상처 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그분의 고백입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

…마음의 상처는 내가 한두 번 이벤트처럼 상담해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속적으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어렵다.”

 

마침 며칠 전 어느 자매가

투병 중인 친구 분을 위해 성경말씀을 선물해 주고 싶다고

다음 말씀과 더불어 한지와 붓 펜을 갖고 왔기에 정성껏 써드렸습니다.

‘참으로 내가 너에게 건강을 되돌려 주고 너의 상처를 고쳐 주리라.’

(예레30,17ㄱ)

 

최고의 의사는 주님이십니다.

심신의 상처는 물론 신비감각도 치유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래서 교회의 성사가, 특히 평생 성사인 성체성사와 고백성사가 고맙고

매일의 성무일도가 고맙습니다.

 

최고의 명의이신 살아계신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마음의 상처와 더불어 무뎌진 우리의 신비감각도 치유해주십니다.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시편130,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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