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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0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1 조회수32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1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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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흔하게 퍼져 있는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일 겁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며 나름대로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그 행복이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당장 기분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재물을 얼마만큼 가져야 하는 것인지, 또 아니면 세상에 어떤 자리나 명예를 얻어야 하는 것인지 규정하면 또 모자라고 더 채워야, 가져야 할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면 또 그 상태는 행복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행복 선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행복 선언이란 앞으로 행복해질 것이라는 예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면 결국 행복해진다는 처세술에 대한 가르침도 아니고, 내용처럼 하나 같이 고통스러운데도 잘 참고 견디면 나중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고문도 아닙니다. 행복 선언이란 지금 상태가 바로 행복이라고 결론 짓고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먼 미래에 차지하게 될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여겨지고, 지금의 삶을 어떻게든 참고 견뎌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앞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이 이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의도적인 착각이 무리도 아닌 것이, "행복하여라"는 선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고달픈 인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반면 나중에 받게 될 영광은 분명히 상상 할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이 틀림없습니다.

그야말로 행복하지 않는 현재에 미래의 희망을 주시는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글은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고통은 미래를 위해 참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같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 참고 인내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고, 온유하며,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고,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이루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아야 하고, 주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온갖 말들로 모함을 당하면 나중에는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니 참아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이렇게 보는 것은 희망은 있지만 지금 살아가는것이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내용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하거나 각오시키려하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장미빛 미래에 대한 해석은 조금 방향이 틀린 듯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금 어떤 이유로든 이렇게 이미 살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선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행복의 주인공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아직 힘들지 않는 이들에게 오늘 복음은 각오하고 살아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미래 때문이 아니라 지금 그 삶이 옳기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늘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어떤 것이라도 손에 쥘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가난하게 살고, 어떤 일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분노의 순간에도 온유함을 잃지 않고, 의롭게 살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나 자비롭고, 마음의 깨끗함을 깨뜨리지 못하며, 모두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상처를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해서 그로 인해 받는 모든 손해와 박해, 모함까지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현실에서 떨어뜨리면 복음은 언제나 삶의 지침서처럼 보이지만, 실제 복음의 현장은 가르치고 그 다음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하느님의 말씀에 맞는지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순간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행복하다는 선언을 받은 이들에게 주어질 하늘나라의 선물은 그들이 의도하고 얻으려는 목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는 하늘나라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행복하다고 선언하시는 분도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선물을 주시는 분도 분명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행복선언을 당하는 이 순간도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그것이 최선의 삶이기에 그렇게 사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인지는 예수님이 내려주신 이 선언으로 확인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가 하늘나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착오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우리가 사는 최선의 삶에 내려지는 주님의 선언과 같은 것입니다. 정작 우리는 모르지만 삶의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사랑을 담아 살아가는 것이 곧 행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곧 행복인 삶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의 주인공은 예수님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은 산 아래에 모여든 수많은 백성에게 그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위인들을 만들고 행복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미 숱한 사연 속에서도 선함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며 사랑하며 사는 이들의 삶을 하느님이 알고 계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차지하는 하늘나라. 그래서 그들을 우리는 "성인"이라 부릅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 뜻대로 사는 이들이 그 모습으로 서로 사랑하며 사는 세상이 하늘나라입니다. 그 성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억하는 오늘 그 하늘나라의 주인공은 그래서 하늘에도 있고, 지금 우리 사이에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 지금도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한 마음으로 행복선언을 외우고 계시는 분은 없겠죠?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으로 살아가는 이가 성인입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 그리 살지도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 살지도 않는 그저 지금 그래야 하기에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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