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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의 날 - 겸손![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2 조회수444 추천수2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잘못한 것 같아요.

지금 기분이~~

어떻게 성당을 어떻게 갑자기 불릴 재간도 없고~~

제가 잘못한 건 없죠?

제의실로 들어가셔도 돼요.

할머니, 거기 거 불 때고 있다니까 제의실 넓은데......

난 추워서 안 올 줄 알았죠!

그냥 편안하게 계시지~~^^


지금 11월이면 무슨 성월이죠?

<위령성월>

아주 구두쇠 부자영감이 계셨데요.

아무튼 돈을 모으는 거, 그 목적으로 살았어요.

일가친척들한테도 아무리 그 사람들이 어려워도 정말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돈을 모았데요.

그래서 이제는 뭐 통장도 다섯 개 여섯 개가 되고/ 서울 강남에도 빌딩이 하나 있어가지고 거기서 나오는 세만해도 한 달에 뭐 몇 천만 원씩이 되고/ 뭐 강릉 쪽에도 뭐 또 땅이 있고/ 아무튼 뭐 이래가지고 유일한 재미가 뭐겠어요. 통장 들여다보고 돈 불어나는 거 이게 재미였겠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주 배가 쥐어뜯을 듯이 아파.... 너무너무 아파요.

이분은 어디가 아프면 절대 병원에 안 갔거든요.

병원에 갈 돈이 어디 있어요? 아깝게....

그러니까 유일한 약이 뭐냐?

배꼽에다 아까징끼 바르는 거, 어지간하면 또 다 나았어.

웬만한 병은 그냥 빨간약만 배꼽에다가 쳐바르면은 그 희한하게 다 낫더라~~ 이거야.

그래 유일한 약은 빨간 약 하나밖에 없어.

그날 배가 하두 쥐어뜯어서 빨간약을 배꼽에다 발랐는데.... 한 병을 다 쏟아 부어도 뭐 여전히 나을 기세가 없네~~

뒹굴뒹굴 뒹굴 그러다가 큰아들을 불러가지고

“얘, 아이구 나 이러다 죽겠다. 병원에 좀 데려다 다오.”

“하이구 세상에 살다 살다 아버지가 병원엘 다 가신다고 그러고 참 해가 딴 데서 뜨겠습니다.”

그래서 병원엘 모시고 갔어요.

근데 뭐 이제 간 김에 종합검사를 했지요.

종합검사 결과가 나와서 병원에 큰아들과 갔더니 의사가 혀를 차.

“쯧쯧........”

그게 뭔 소리예요.

“아이구 참 영감님,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수? 뱃속이 다 암덩어리유. 뱃속이 다....”

그러면서 “영감님, 삼 개월 꼴까닥.....” 그러는 거예요.

그게 뭔 뜻이야.

“그러니까 가서 영감님 드시고 싶은 거 실컷 드시고 그냥 병원에 다시 오실필요가 없어요. 우리 의사들이 할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가세요.”

삼 개월 사형선고 받았어요.

참, 하늘이 노랗고 땅이 흔들리고 세상에 다른 건 안 아까운데 돈 못써보고 죽는다는 게 이게, 그 많은 돈을 다 어떡할거냐? 수백억이 되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 넘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돈을 모았는데......이 어떡하냐 말이예요.

집에 갔더니 이제 가족회의가 열렸겠죠?

큰아들 작은 아들 며느리 해가지고 한방에 모여가지고 뭐 또 언성도 높아지고, 이 영감님이 화장실 가다가

‘도대체 이놈들이 무슨 얘길 하나~~’

하고 문에 다가 귀를 갔다댔더니 세상에 기가 막혀!

지 애비 아직 안 죽었는데 뭔 싸움하고 있는 거예요?

경험들이 많으시구만 그렇게 어려운걸 다 알고.....^^

아직 아버지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살아있는데 세상에~~

며느리들은 며느리들끼리 싸우고 앉았는거야.

“형님은 그래도 뭐 돈이 있잖아.”

며느리가 또 분배를 해요.

“저기 저 둘째는 서초동 꺼 니꺼야. 응, 그리고 막내는 강원도 평창에있는 그거 갖고, 그래도 우리가 내가 장손이니까 강남에 있는 빌딩은 내가 맡아야 되겠다.”

그러니까 또 그거가지고 작은 아들이 대들고 싸우고, 그 하는 꼬라지들을 보고 이 영감님이 팔십이 다 돼서 죽기 삼개월전에 이제야 철이 난거예요.

‘아~헛되고 헛되구나. 결국에 자식새끼들끼리 멱살 잡고 싸우게 내가 돈을 모았구나.’

그래서 죽음을 준비했어요.

그래서 자식들을 다 불러놓고 마지막 유언을 했습니다.

“너희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내 재산, 삶아먹든 튀겨먹든 꼬치를 해먹든 샤브샤브를 해먹든 마음대로 해먹어라. 근데 한 가지 내 원이 있다. 이거만큼은 꼬옥 들어줘야 된다.”

“뭡니까? 아버지”

재산 주신다는 데 뭐 다른 거 못해드리겠습니까?

“나 죽고 나면은 관을, 내가 들어갈 관을 특수제작을 해다오. 양 옆에다가 구멍을 내 가지고 양손을 관 밖으로 빼내라. 그리고 병풍을 치지 말고 관을 반드시 벽에다 세워놓고 양손이 빠져나오게끔 보여야된다.”

“아이구 아버지, 이제 어떻게 암이 뇌까지 올라가셨습니까? 뭔 소리세요?”
“이놈들아! 내가 지금 노망이 난 게 아니야. 아무튼 내 손을 빼놔. 손 쥐고 죽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뽄드를 발라서라도 손바닥을 펴놔. 분명히 내 친한 친구놈들, 나보다도 더 지독스럽게 사는 놈들이 몇 있는데 고 놈들이 내가 죽었다고 하면은 돈 만원씩 들고 부조를 해올 거다. 내가 내 마지막으로 내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하나, 바로 빈 손바닥이야. 내 그거 가르쳐 주고 싶어. 니놈들만큼은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내가 이렇게 넘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고 살아 돈을 긁어모았지만 빈손바닥보고 니놈들도 정신 차려. 이게 바로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내 친구들에게.....그러니까 니들은 아무튼 관을 특수제작을 해라.”

아버지가 삼 개월 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 원하는 대로 관 양쪽에 구멍을 뚫어서 팔을 양쪽으로 빼냈어요.

병풍을 치지 않고 관을 벽에다 세워놨죠.

세상에 사람들이 문상을 왔다가 다 뒤로 자빠지는 거야.

얼마나 놀랍고 무서워요?

시체손이 양쪽으로 빠져나와있으니.....

그러니까 그냥 오는 사람마다 “이 개 후레 잡놈들, 아버지 시신을 말이야. 저렇게 한다고 이놈들 어딨냐고?

노인네들이 막 자식을 두들겨 패려고 난리예요.

그거 한 마디 한 마디 대꾸하기가 귀찮으니깐 아예 프린트해가지고 코팅해서 벽에다 써 붙였어.

[아래와 같은 이유로 아버지 손이 빠져나와있음. 저희들은 아무잘못 없음.]

그거 먼저 읽어보고 들어오라고 앞에서 아예 안내까지 하나 해놓고.....

그 영감님의 친구들, 구두쇠영감 셋이서 그날 그 친구의 빈손바닥을 봤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에 포장마차에 앉아가지고 쏘주 한잔을 까면서....서로가 한마디씩 고개를 푹 숙이고.......

“야~ 너 뭐 느낀 거 없냐?”

“많다.” 

“너는 느낀 거 없냐?

“야, 나 오늘 충격 받았어. 그놈이 그렇게 우리들 보라고 그렇게 손바닥 피고 죽은 거지? 맞지? 야, 나 오늘 정말 내 인생이 다 뒤집혀졌다. 걔 빈손바닥 보고....그래 이제 남은 여생, 비록 돈 모으기는 개처럼 내가 모았어도 이 돈 쓰는 거 만큼은 내가 정말 아름답게 쓰고 죽어야 되겠다. 그런데 아름답게 살려면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종교가 있어야 돼 근데 내가 여기저기 알아보니깐 그래도 그중 천주교가 제일 낫다 그러더라. 그러니까 우리 성당 나가자.”

아, 이래가지고 한사람은 대치동 예비자 교리 반에 들어가고, 한사람은 역삼동으로 들어가고, 한사람은 뭐 또 거시기, 영등포쪽으로 가가지고 그래서 육 개월 후에 셋이서 베드로 바오로 루가 요렇게 세례 받았다~~

하는 전설이올시다. ^^


믿지 않는 이들은 죽을 때 빈손으로 가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을 뜰 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온몸에 휘감고 감을 믿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죽을 때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가지만

믿는 우리들은 성령의 칼을 쥐고 감을 믿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세상 뜨면서 아무런 준비를 못하고 가지만

우리 믿는 이들은 용서와 화해를 하고 감을 믿습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같이 놀았데요.

하루 종일 놀고 이제 메뚜기가 가면서

“하루살이야! 우리 내일보자!”

그러니까 메뚜기가 아니 하루살이가 뭐라 그랬겠어요?

“내일이 뭐냐?”

하루살이한테는 내일이 없지요?
메뚜기랑 개구리가 친구가 돼서 일 년 내내 같이 놀다가 개구리가 이제 추우니까

“아이구 나 긴 잠자러 들어가야 되겠어. 우리 내년에 보자.”

그러니까 메뚜기가 “내년이 뭐냐?” 그랬데요.

또 개구리랑 철수랑 친구가 돼가지고 잘 놀다가 철수도 인제 나이가 들어가지고 ‘우리 비록 지금은 내가 헤어지지만 병이 들어서 나중에 우리 천국에서 보자.’

그러니까 개구리가 “천국이 뭐냐?” 그랬데요.


영생이 뭐냐!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 분명히 영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 오신 거죠?

이 얼마나 불편해요?

여러분들, 돈 주고 있으라 해도 이렇게 쭈그리고 있겠어요?

참 이 좁은데..다리도 못 펴고, 이 얼마나 불편한 자세예요!

왜 신앙생활을 힘들게 할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포기해야 할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못 갖고 살고...

또 나 같으면 장가도 못가고~~

수녀들 같으면 시집도 못 가고....

세상의 방식대로 살지 못하고 하느님 법 사이에서 늘 갈등을 겪고 사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되는가!

그건 뭡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죠?

맞지요?

영생이 없다고 하면 나나 여러분이나 이렇게 고생할 이유가 없어요.

세상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지 뭐가 있냐...... 그럽니다.

심지어는 교인들도 그런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 죽고 난 뒤에..뭐 가봐야 알지 뭐 있어요!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명히....확률이 50%일거예요.

있다고 생각하면 못된 짓을 못해요~~

두렵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해!

그렇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믿고 살았어요.

그런데 죽음을 앞두고는 불안해지기 시작해~~

내가 이제까지 믿었던 대로 죽고 난 다음에 아무것도 없다면 아, 다행인데...

그런데 확률로 50%란 말이야

있든지.....없든지.....

그런데 내가 믿고 싶지 않은 내세가 만일 있다면...

내가 살아온 꼬라지로 봐서는 지옥밖에 갈 데가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지요!


사제는 직업상 많은 죽음을 봅니다.

저 같으면 교우들 임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신자아닌 사람들의 임종에 임할 때도 있어요.

어떤 때 가면 한평생 높은 직책만 찾아다니던 분인데.. 내 수단 자락을 잡고 막 살려달라고 난리를 쳐요...나 죽기 싫대요...신부님이니까 얘기해 줄 수 있지 않네...나 더 살고 싶대요.

그런데 그 영감님 연세가 89살이야,  그런데도 살려달라고 난리를 쳐요.

죽고 난 다음에 얼굴을 보면 편치가 않아....이쁘지가 않아요.

사람은 죽기 전에 그 사람의 모든 인생이 다 총정리가 되요.

이 사람이 살아온 모습을 내가 보지 않았어도...

‘아, 참 추잡스럽게 죽는구나! 참 왜 이렇게 죽을까! 왜 이렇게 죽을까!’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만큼 두려운거지요.


비록 한평생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배추장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던 그런 할머니라 해도 믿음을 갖고 뜨거운 신앙 속에서 산 사람들은 임종 때 보면 위대하게 죽어요.

자식들 그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예요.

엄마, 엄마...하면서.... 할머니는 자식들한테 할 이야기 다 하세요!

“너 둘째 왜 우냐, 너 내가 죽는 것 계기로 너 성당 나가! 냉담 풀고 응?

그리고 첫째 , 너 언제 조당 풀거야! 조당 풀어.”


사제가 가면 어느 할머니들은 숨이 넘어가다가도 이렇게 깨요.

그러면서 지금처럼 할 얘기 다 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자성체까지 다 받아 잡숫고

“신부님 가!”

그렇게  아주 작별인사까지 할 것 다 하고 가셔요.

그런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천사얼굴이야.

‘얼마나 아름답고 이쁜 지 몰라!

그래서 사람은 죽기 전 죽고 난 다음에 얼굴을 보면.....

그리고 언제 또 알아요?

장례 치를 때 보면 알지요?

인심 잃고 산 사람은 장례 때 사람이 없어요.

며칠 전 우리 이모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장례 미사 때 제가 못 가서 전날 가서 미사를 드렸는데

우리 이모는 내가 봐도 참 천사였어요!

우리 녹번동신부님이 장례미사를 해 주시는데 그런 얘기를 하셨대요.

내 사제생활 오래 했어도 이렇게 천사같이 산 자매는 처음 봅니다.

100% 순명하고, 봉사하라면 봉사하고....정말 나눌 줄 알고...

우리 이모는 그렇게 사셨거든요.

장례미사 때 성당이 꽉 찼대요. 새카만 옷을 입고....

평소에 인심을 잃고 하느님과 사람 앞에 막 되게 산 사람은 죽고 난 다음에 보면 3일 동안 썰렁해요. 사람이 안 가요.

사람이 죽고 난 뒤에....죽고 난 다음에 얼굴, 장례 치를 때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총정리가 되지요.


위령성월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해 같이 기도하는 성월이지요.

중심은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월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분명히 심판을 받고 천당과 연옥, 지옥으로 가지요.

그런데 영혼을 위한 기도의 목표는 천당에 있는 사람입니까?

지옥에 있는 사람입니까?

연옥에 있는 사람입니까?

어느 쪽에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가 위령미사 드리고 연도 바치는 이유는, 천국이나 지옥에 있는 사람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그지요?

천국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기도가 필요해요!

오히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위해 기도해 주지요.

지옥에 떨어진 사람은 아무리 기도하고 위령미사 드려도 못 올라와요.

우리들이 드리는 연도의 목표는 어디냐!

연옥영혼들이예요.

내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모르잖아요.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가 지금 연옥에 계신지, 천국에 계신지, 지옥에 계신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기를 쓰고 조상들을 위해서 미사 봉헌하는 거예요.

개신교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없어요.

개신교는 도 아니면 모예요. 그렇죠?

천국 아니면, 지옥이예요.

그렇게 둘 밖에 없다고 그런다면 솔직히 천국 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래서 개신교에는 위령성월이라는 게 없어요.

연도라는 게 없어요.


마태복음 5장 26절에 보면 연옥이야기가 나오죠.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풀려나오지 못할 것이다.>

‘연옥에서 보속을 다해야만 나온다!’ 그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영혼은 연옥을 얘기하는 겁니다.


집회서 7장 33절에 보면

<산 사람 모두에게 너그럽게 은덕을 베풀 것이며, 죽은 사람에게까지도 은덕을 베풀어 주실 겁니다.>

지옥에 있는 영혼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말하는 겁니다.

하느님의 자비 때문이라도 연옥은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당당하게 천당 갈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점수로 따져서 90점 이상만 천국가고 90점 이하는 지옥 간다.

그럼 90점 이상 받을 사람이 우리 가운데 몇이나 되겠는가!


하느님은 그렇게 무자비하지 않습니다.

천국 가기에는 쪼끔 때가 묻어 있고, 지옥에 가기에는 빨아서 쓰면 좀 쓸만 하고.....

그러니까 연옥에 가서 탁 세탁해서 깨끗하게 된 다음에 천국으로 보내는 거지요. 그게 바로 연옥이예요.

개신교에는 연옥이 없어요.

연옥이 있는 영혼들에게 지상에 있는 이들이 바치는 기도와 위령미사는 천국 가는 노자 돈이 됩니다.


내가 바치는 기도와 위령미사만 있다면 내 아버지가 내 어머니가 거기에 있다면 연옥에 계신 내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조상들에게 내려오는 어둠의 영향이 후손들에게 내려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후손들에게 연도를 받아야 할 처지임을 생각하면서 연옥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 산 사람은 죽을 때 모습이 아름답고 그 내세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언제라도 그분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해야 될 겁니다.

특히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정리하십시오.


그래서 11월 한 달, 우리의 영적 테마는 겸손입니다.

위령성월은 겸손을 깨우쳐 줍니다.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 숙이고 다닌다고 겸손은 아닐 겁니다.

겸손은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겸손은 자기에 대한 끝없는 관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끝없이 뒤돌아보면서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고백할 때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 겸손이지....고개 숙이고 다닌다고 겸손은 아닐 겁니다.

이 겸손으로부터 하느님에 대한 관상으로 저절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기에 대한 관상도 소홀히 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관상으로 먼저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늘 삐거덕거립니다.

다시 말하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녁기도 하나만이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충실히 한다면.... 그 사람은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공의회 이후에 세상을 향해서 많이 열려져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도 참 많이 있습니다.

아마 그 중에 대표가 신공이 아니겠는가!

원래 우리 가톨릭교회는 기도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 천주교에서는 신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공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기도가 조과(朝課)

잠자기 전에 하는 기도가 만과(晩課)

그 과자는 일 課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못 먹고 학교에 가는 한이 있어도 조과를 드려야 되고/ 밤에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파김치가 되어도 만과를 바쳐야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것이 우리 신앙선배들이었습니다


우리 가톨릭에는 신공이 없어져서 이렇게 냉담자가 많은 것이 아닌가!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초등학교까지는 엄마 무서워서 성당에 나오지만......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냉담에 빠집니다.

11월 한 달 동안 먼저 가신 연령들과 더불어서 내 영혼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거룩한 성월이 되도록 살펴보는 한 달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가톨릭 성가 -살아서 나를 믿는 이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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