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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과거를 내려놓는 시간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2 조회수962 추천수11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위령의 날 - 과거를 내려놓는 시간

 


 

시냇가에서 아리따운 처녀가 물을 건너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마침 길을 가던 한말의 대선사 경허 스님과 그를 따르는 젊은 수도승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처녀는 부끄러움을 참으며 젊은 스님에게 도움을 구하자, 젊은 스님은 처녀에게 정색을 하며 화를 내었습니다.

“우리 불가에서는 여자를 가까이 하면 파계라 하여 내쫓김을 당하는데 어찌 젊은 처자가 그런 요구를 하십니까?”

난처해진 처녀는 노승 경허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경허는 선뜻 등을 내밀며 “그거 어려울 것 없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경허는 처녀를 등에 업어다 건너편에 내려주고는 계속해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뒤따라가는 젊은 스님의 마음에는 갈수록 온갖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땡중이 아닐까?”

젊은 스님은 자기의 스승 경허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이를 꾹 참고 십리 길을 더 갔습니다. 그러나 젊은 스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침내 “스님,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수도하는 스님이 어떻게 젊은 여자를 업을 수 있습니까?”하고 따지며 대들고 말았습니다.

젊은 제자의 화난 목소리를 듣던 경허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나는 벌써 그 처자를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네놈은 아직도 그 처자를 업고 있느냐?”

 

얼마 전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느닷없이 저는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때는 제가 참 서운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을 했건 안 했건 그 오래 된 것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이야기부터 하는 것을 들으니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과거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면 현재를 살 수 없습니다.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에겐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나는 ‘있는 자’(I am who I AM)라 하시며 당신 이름을 말씀하실 때 현재형으로 쓰셨고, 예수님도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다고 하실 때도 ‘있었다.’가 아니라 “나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다’(I AM).”라고 현재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느님은 항상 현재를 사시기에 행복이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에 집착하고 후회하며 또 미래를 걱정하기에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것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면 천국에서 현재를 살아갈 수도 없고 그래서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고 아직 죄책감이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보속을 다 하여 모든 양심의 가책을 청산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저도 가끔 과거에 잘못했던 것들이나 후회되는 일들이 순간순간 떠올라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한 가지라도 후회되는 일이 없이 산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을 소화시키지 않으면 계속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세례자 요한보다는 크다고 합니다. 그렇게 완전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주님의 나라이기에 연옥을 거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만약 개신교가 말하듯이 믿음이 있으면 천국, 없으면 바로 지옥이라 한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에 떨어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나무더러 명령하여 뽑혀져 바다에 심기라면 그렇게 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누가 믿음으로 산과 사물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따라서 이런 부족함을 지닌 인간들이 우리 모습이기에 연옥이란 곳은 오히려 과거의 모든 양심의 가책과 하늘나라 들어가기에 부족한 모든 부분들을 완벽하게 보완하는 곳이기에 벌 받는 곳이 아니라 은총의 장소인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친구 생일잔치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창피해서 그것을 가리느라 고생만 하다 나왔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잘 받아들여줘도 하늘나라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이 있으면 본인이 견디지 못합니다. 만약 그 작은 부족함 때문에 지옥에 가야 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성모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옥의 보속이란 것이 있어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보완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조금만 보완하면 완벽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마련된 최후의 준비 장소가 연옥인 것입니다.

 

로마의 성당 중에 유일하게 고딕양식을 지닌 성당이 있는데 일명 연옥성당이라고 합니다. (Google 검색에서 ‘Museo delle anime del Purgatorio’ 의 이미지를 검색하시면 성당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몇 개의 전시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엔 연옥 영혼들이 잠깐 나타났다가 남겨놓은 흔적들을 모아놓은 작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연옥 영혼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토로하며 기도해 달라고 성경이나 옷, 혹은 탁자에 남겨놓은 손모양의 탄 자국들이나, 제대 기둥에 새겨진 연옥에서 고통 받는 수사님의 얼굴 등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이 성당에 세워진 것은 그 자리에 전에 있었던 성당이 화재로 전소 되었는데 하나의 기둥에 마치 한 수사님이 연옥 불 가운데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불에 그슬려 새겨진 것에서 기인되었습니다.

한 수녀님이 다른 수녀님께 당신이 죽으면 연옥에 갈 테니 기도를 해 달라고 했는데 아마도 기도를 많이 해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수녀님이 밤에 나타났는데 온 몸이 불에 그슬려 붉은 빛이었고 손을 대는 곳마다 그 몸의 열기에 손 모양으로 타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도 좀 해 달라고 옷과 손목에 손을 댔는데 옷도 손 모양으로 타버렸고 손에는 온통 물집이 잡혔다고 합니다.

연옥성당 박물관에는 그런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연옥벌이 천국가기 위해 그냥 스쳐지나가는 장소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인들은 연옥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을 한데 합친 것보다 연옥의 아주 미소한 괴로움이 더 혹독합니다.” (성 치릴로)

“연옥에서 일순간 받는 고통은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의 고통보다 더 무섭습니다.” “현세에서 받는 모든 괴로움보다 연옥불은 혹독합니다.” (성 아우구스띠노)

 

연옥의 고통이, 천국에 오를 수 있고 없고의 희망을 제외하고 그 고통만으로 따진다면, 지옥 고통에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현세에서 보속하는 것보다 연옥에 가서 보속하는 것이 더 혹독할까요?

연옥에서 바칠 수 없는 공로가 있기 때문인데, 바로 ‘믿음’의 공로입니다. 연옥에선 멀리서나마 하느님을 뵐 수 있기에 그 바치는 보속에 믿음의 공로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에서는 보지 않고 믿는 공로가 있기에 이곳에서 받쳐 주는 기도가 연옥에서는 수천, 수만 배 보속의 효과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식사 후 기도 한 번만으로도 어떤 영혼에게는 꽤 많은 시간의 보속을 줄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런 말을 하십니다.

“눈물을 줄이고 기도에 힘쓰십시오. 운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당신을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운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돌아가신 분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남아있습니다. 그런 도움을 받으시는 분이 하늘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오며 당신을 위해 기도해 준 사람들을 위해 또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려주시겠습니까?

겨울 문턱에서 한 달 동안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곧 우리의 겨울인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 신앙도 연옥에 적게 머물 수 있도록 더 열심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웃 사랑의 실천인 동시에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해서 일거양득의 매우 좋은 신심행위가 됩니다.

 

<나 오직 주만 따르리>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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