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1월 3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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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11-02 | 조회수733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11월 3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 루카 15,1-10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지금은 무조건 예수님께 나아갈 순간>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결점이나 약점, 반복되는 악습들 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없애버리고 싶지만, 그게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최근 참으로 부끄러운 일을 한 가지 체험했습니다. 열심한 후배들의 모임 때였습니다. 강의 시간에 제가 공공연하게 한 가지 결심을 선언했습니다.
“살레시안들의 대희년인 돈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며, 각자가 뭔가 한 가지씩 봉헌한다든지,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는 거창하거나 두리뭉실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돌아보니 ‘과속’이라는 아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날아오는 딱지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쓸데없는 연료 소모도 엄청날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도로 표지판이 지시하는 규정 속도를 정확하게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대희년을 준비하는 제 개인적 결심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부터 꽤 장거리를 뛰어야 했습니다. 운전대 앞에 앉으면서 어제 공개적으로 한 말도 생각나서 규정 속도를 지키면서 천천히 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좋더군요.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너무나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습관을 바꿔서 그런지 마치 기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도착지는 생각보다 너무나 멀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예정시간을 보니 밟지 않으면 불가능했습니다. 이러다 미사시간 늦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제의 ‘대단한’ 결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예전의 공격적, 저돌적인 저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악습이란 것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습니다. 당대 질 나쁜 사람들의 대표 주자였던 세리와 여러 부류의 뒷골목 인생들이 몰려왔으니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세리와 죄인들의 지난 삶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들어선 이 길, 한번 벗어나보려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고 한번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나름 수도 없이 결심도 하고, 때로 죽기 살기로 몸부림도 쳐 봤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는다, 이런 나쁜 습관은 내일부터 버린다며 혈서까지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뿐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악습을 단칼에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행동이 뒷받침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어제로 돌아가서 악습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악습의 순환 고리를 끊지 못하고 한 평생 괴로워하며 살았던 세리와 죄인들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전의 지도자들이 그토록 회개를 부르짖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던 세리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감미롭던지, 또 얼마나 따뜻하던지, 그리고 얼마나 큰 위로를 주던지, 그들은 그들의 폐부 깊숙이 박혀버렸습니다. 그들이 정수리와 골수를 관통하면서 그들을 순식간에 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구제불능으로 낙인찍힌 세리와 죄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향해, 그리고 몰려든 세리와 죄인들을 향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투덜거렸습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이런 그들의 빈정거림에 예수님께서는 제대로 한방 날리십니다. 그 한방의 말씀은 위선자들에게는 마치도 쌍날칼처럼 날카롭지만 세리와 죄인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럽습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살다보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 생깁니다. 때로 사방이 높이 둘러싸인 벽으로 가로막혀 탈출구가 안보입니다.
그 순간은 바로 예수님께로 나아갈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리와 죄인들처럼 큰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송구스럽고 죄송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무조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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