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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빡빡머리 깍은 날 /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3 조회수671 추천수15 반대(0) 신고
 
 

두 달 전쯤 캐나다에서 머리를 깎은 뒤 지금까지 차일피일 머리 깎는 일을 미루다보니 어느 새 더벅머리 총각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들른 단골 이발소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평소에 내 머리를 깎아 주던 이발사는 이미 다른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처음 보는 파키스탄 출신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주위의 평도 있었고 또 겨울이라서 짧게 깎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조금만 다듬어 달라고 분명히, 그것도 두 세 번이나 강조해서 부탁했는데도 아무래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발사의 기계가 내 뒷통수의 절반 가까이까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어머나! 너무 짧아요. 됐어요, 벌써 너무 짧다구요.(Mamma mia! Sono troppo corti. Basta cosi, gia troppo corti.)”
“네네...(Si, si......)”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탈리아 말이 서툰 파키스탄 이발사에게는 ‘짧은(corti)’이라는 단어만 귀에 들어 왔었나보다. ‘네네...’를 연발하던 그는 내게 어찌할 수 있는 여유도 주지 않고 기계에 끼워져 있던 덧날까지 빼버리고는 사정없이 내 옆이며 뒷머리를 ‘짧게’ 밀어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화낸다고 다시 담을 수 있을까. 써늘해진 머리를 한 채로 집에 돌아왔더니 원장신부님이 나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리면서 하는 말이 또 내 폐부를 깊숙이 뚫고 들어왔다.

“하하하, 못 보던 중국스님이네? 누구셔? 드디어 종교에까지 ‘중국의 침략’(L'invasione cinese)이 시작 됐구만. 하하하”

기도가 끝나고 식당에 내려가자마자 신부님들이 다들 웃으면서 위로랍시고 한 마디씩 남겼다.

마르코 신부님 : “괜찮아, 그래도 머리 안 자르고 머리카락만 잘랐으니 다행이지 뭐... 키키킥.”
콜롬보 신부님 : “6유로 줬다고? 6유로에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크크큭.”
마우리찌오 신부님 : “성탄 휴가 때 어디 가나? 안 가? 그럼 됐어, 금방 길어. 내년 부활쯤이면 괜찮아져. 하하하.”
카나메 신부님 : “모자 있어? 모자 쓰면 돼. 하나 사줄까? 허허허.”

지금 나는 거의 빡빡머리에 가까운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 깜짝 놀라며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다음 주에 학교에 가면 또 한 번 난리가 날 판이다. 아무래도 다음 주에는 아플 것 같다. 아니, 아파야겠다.

어쩌면 우리들이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못 이해하고 황당한 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겠다. ‘이해를 못하는 것’과 ‘잘 못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해를 못한 것’은 답답하기는 하지만 다시 묻고 또 물으면 언젠가는 말씀대로 따를 수는 있다. 하지만 ‘잘 못 이해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 내용과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여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응답을 들을 때는 더욱 더 신중해야 한다. 하느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고 싶은 대로 들어서도 안 되고 또 전혀 다른 음성을 하느님의 음성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음성 그대로 듣고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올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과연 한 해 동안 행했던 모든 일들이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뜻 그대로였는지 잘 돌아볼 때다. 가만히 나를 생각해보니 그 파키스탄 이발사만 원망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올 해만도 벌써 몇 번이나 하느님 뜻을 거슬러 하느님의 머리를 빡빡으로 밀어버렸는지 모른다. 하느님 머리 깨나 시려우셨겠다. ㅋㅋㅋ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 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요한10,5)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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