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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길을 찾는 사람들 - 1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3 조회수565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1.11.3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로마14,7-12 루카15,2-10

 

길을 찾는 사람들

 

사람만이 길을 찾습니다.

길을 찾기에 사람입니다.

길을 찾는 사람이라 하여 구도자(求道者)라 부릅니다.

 

길을 잃어 방황이요 길이 막혀 절망입니다.

오늘은 ‘길’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오늘 복음의 ‘길 잃은 양’에서 착안했습니다.

 

요즘 며칠 사이 단풍잎들 다 떨어지니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나무가 참 단순하여 좋습니다.

이런저런 환상의 나뭇잎들 다 떠나보내고

하늘 길만 뚜렷이 남은 성자(聖者)의 삶을 상징합니다.

하늘 향해 쭉쭉 시원스레 뻗은 나무들은 그대로 하늘 길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역시 또 하나의 하늘 길입니다.

하늘을, 하늘 길을 잃어 방황이요 여기서 파생되는 온갖 불행입니다.

수도원에 피정을 왔던, 로마에서 성서학 박사를 받은

어느 후배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개가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아, 저 수사님이 책에 나오는 그 수사님이고

저 개가 바로 그 댕기구나 직감했습니다.

나는 과연 주님을 댕기처럼 충실히 졸졸 따라다니는 가 반성했습니다.

또 얼마 전 제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 공부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듯 생각됐습니다.

막막하고 참 허탈했습니다.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깊이 성찰했습니다.”

 

늘 주님을 따라야 길을 잃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상징하는바 참 깊습니다.

공동체를 떠나 제 길을 찾아 떠날 때 길을 잃습니다.

 

잃은 양 1마리 대 잃지 않은 양 99마리에서

저는 1%:99%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비율이

20:80에서 1:99로 변화된 천민자본주의 사회입니다.

하여 99%의 없는 자로 하여금 1%있는 자의 사회에 대해 분노하라 합니다.

서울 시장 선거도 바로 이런 기류가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부가 골고루 분배된

10:20:40:20:10의 사회가 이상적일 것입니다.

1%:99%의 사회에서 저는 99의 길 잃은 양이 연상되었습니다.

1마리 길 잃은 양이라면 문제가 없겠는데

99마리 길 잃은 양이라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닙니다.

하느님도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바로 오늘 종교 현실을 상징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지요.

‘나홀로’ 아동만이 아니라

길 잃어 방황하는 ‘나홀로’ 어른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요,

이의 반영이 무수한 자살자들입니다.

 

종교인들 역시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성찰케 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빈부의 격차 이전에

하늘 길을 발견하는 의식의 혁명, 영적 혁명의 회개입니다.

이보다 하느님이 더 기뻐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99%의 없는 자들이 하늘 길을 발견하여 각성할 때

비로소 1%:99% 문제는 서서히 해결될 것입니다.

바로 이의 좋은 수단이 선거입니다.

선거가 있기에 폭력의 유혈 혁명이 아닌

평화로운 무혈 혁명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회개요 평화롭고 공정한 선거입니다.

 

하느님의 유일한 기쁨은 잃은 양을 찾는 것입니다.

즉 죄인의 회개입니다.

 

밖의 잃은 양들을 생각하기 전,

과연 나는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나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하늘 길은 멀리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회개로 눈만 열리면 어디나 활짝 열려있는 하늘 길이요

곳곳에 하느님 향한 이정표들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아무도 하느님께 갈 수 없다.”

 

바로 우리의 하느님 향한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 주님을 따라갈 때

비로소 구도자의 구원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이 빠진 자신은 환상이요 우상입니다.

 

자신을 위해 살 때 길을, 삶의 의미를 잃고

결국은 허무로 인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도반입니다.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을 때

길이신 주님과 일치되어 생사를 초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길벗이 되고자 오십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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