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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곡매괴성모순례지 영성(4) - 성소의 못자리[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4 조회수509 추천수3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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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114년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제 수도자가 나온 곳입니다.

박물관 2층에 올라가면 여기 출신 사제 수도자를 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사진을 구하지 못해서 절반도 못 부친겁니다.

 

 

여기는 시도 아니고, 읍도 아니고, 면 단위의 작은 곳인데

성모님이 잡으신 이 작은터에서 끊임없이 사제 수도자들이 나왔습니다.

성소의 못자리이지요.

 

 

여기는 무지무지 기가 센 곳입니다.

많은 지관들이 나침반을 가지고 돌아다니다가 나가면서

“땅기운이 세다!”

 

 

기가 센 땅이기 때문에 이 동네에는 개신교 교회가 들어설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미신바가지들은 얼씬도 못합니다.

 

 

재작년 11월에 천지개벽할 일이 있었어요.

교우들이 나오라 해서 나가보니 요 밑에 마을에 빈집 지붕위로

대나무 끝에 빨간 깃발이 펄력이는 거야.

그것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이 성지 동네에 무당이 기어들어왔어요.

저는 매일 무당집 앞에 가서 구마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쪽 언덕에서 무당집 지붕을 향해서

큰 주사기에 성수를 넣어 밤마다 뿌렸습니다.

‘내가 이기나~~니가 이기나~~’

 

 

무당이 11월에 들어와서 1월까지 석 달을 살았는데

작년 1월에 교우들이 올라와서

“신부님, 기쁜 소식이 있어요. 무당이 이사 간대요.”

빈집이라 들어와 살았는데 성모님의 발밑인 줄 모르고 왔지요.

 

 

무당이 이사 간다고 그러니까 교우들이 찾아가 보았대요.

무당이 자기 몸을 보여주는데 온 몸이 다 부스럼덩어리야.

무당이 꿈을 꾸는데 밤에 불덩어리가 떨어더래요.

그 무당이 불을 맞던 그 시간이 내가 언덕빼기에서 성수를 쏘아대던 그 시간이 아니겠는가!

 

 

어느 날 성당 주차장으로 아주 고급차가 미끄러져 들어왔어요.

기사가 나비넥타이를 매고 내리더니 딱 서서 문을 열어 주었어요.

‘와~ 재벌총수가 순례왔나보다...’

누가 내릴까 되게 궁금했는데 스님이 차에서 내려서 뒷짐을 지고

동산 앞뒤를 '휘익~' 둘러보더니 사제관을 향해서 물어물어 올라옵디다.

 

 

초인종을 눌러서 제가 내려갔지요.

“지나가는 노승인데 차 한 잔 얻어먹을까 해서 왔습니다.”

“들어오시지요.”

부엌을 뒤져보니 오래된 녹차가 있어서 끓여내었더니

“신부님은 차에도 조예가 깊으십니다.”

 

 

차를 한 잔 드시더니 “신부님, 아깝소!”

“평소에 그런 말을 많이 들었소.”

“신부님이 아깝다는 게 아니오.”

 

 

그 스님이 자신을 소개하는데 자기는 조계종에서 한평생 명당만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묘자리는 다 자기가 잡았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여주에 있는 신륵사에 일을 보고 고속도로가 막혀서 국도를 타고 강을 따라

장호원 쪽으로 쭈욱 올라오다가 장호원 입구에서 옛날에 임신부님이 처음 이 땅을 보았던 것처럼

개를 돌려 이곳을 보다가 깜짝 놀랐대요.

 

산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더라는 겁니다.

‘세상에~~ 한국에 이런 땅이 있었다니...내가 왜 저 땅을 못 보았을까!’

 

산 밑을 보니 고색창연한 성당이 보이는 거야..

‘기가 막힌 저 땅을 성당이 먼저 차지했을까!’

 

 

올라와서 땅을 밟는 순간...땅에서 기운이 ‘짜르르~~’

저 쪽에 서서 이쪽을 보아도 명당, 주변을 둘러보니 더욱 돋보여지더래요.

‘야, 기가 막히다!’

 

 

그 스님 하는 이야기가

“신부님, 정말 아깝소..옛날에 이곳에 절이 섰더라면 유명한 사찰이 되었을 거고,

이 동네에서 중이 나와도 수 백명이 나왔을텐데요....”

“아까울 것 없소..동양중은 안 나왔어도 서양중들은 바글바글 나왔오!”

 

신부가 양중이지요?

 

여기는 땅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알아요.

 

이 성당은 지대가 높지 않은데 시야가 환히 트여있어요.

저 멀리 있는 산 능선능선이 다 보여요.

 

처음 이곳에 와서 노을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지은 첫 번째 시 낭독해 드릴까요?

‘아~~노을 죽인다!!!’

그 말 이상은 더 필요가 없었어.

 

빠알간 노을이 넘어가면 천지가 수백 가지 색으로 변하는데 정말 기가 막혀요.

이곳은 성모님께서 수많은 사제, 수도자를 만든 성지예요.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이곳은 성지가 될 수 있어요.

 

 

네 번째 영성, 한국 최초의 성체대회가 1914년에 열렸습니다.

6,25동란 3년을 빼고는 해마다 계속되어서 지난번에 91차 성체대회를 치렀어요.

 

임가밀로 신부님은 이곳에서 51년 동안 계시면서

성모신심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성체가 우리 교회의 중심이라는 것과

성체가 우리교회의 울타리라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쳤어요.

 

 

매년 10월 첫 목요일에 성체대회가 열립니다.

올해는 첫주에 추석이 끼어서 할 수 없이 둘째 주 목요일에 열렸어요.

 

 

 

성체대회가 있으면 석 달 전부터 신자들은 준비를 해요.

 

주교님 성광을 드실 때 그 옆에 있는 도우미신자들은

몇 달 전부터 딴 방을 쓰고 금욕생활을 하면서 준비를 해요.

성광 옆을 지켜야 되니까~

 

 

그건 내가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때부터 했고

아버지가 그랬고, 그것을 자식이 커서 그대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이 무서운 겁니다.

 

 

성체대회 때 해마다 5000명 이상이 옵니다.

여기는 5000명을 밥을 다 해 먹여 보내요.

처음 여기에 와서 “성체대회 오는 사람 밥 해 먹이자!”

“신부님, 이 본당 생긴 이래 2000명까지는 해 보았어도 5000명은 불가능 합니다.”

“2000명 해 먹였으면 5000명도 할 수 있다.”

 

 

묵밥이 뭔지 아세요?

육수에다가 김치 썰어놓고 깨, 김 뿌리고 제일 중요한 것,

도토리묵을 체를 썰어서 위에다가 덮어줘요.

5000명을 다 묵밥을 해서 묵사발을 내지요.

사발에다가 묵 담아 내면 묵사발이지요.

사람들이 묵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 처음 알았다 ”

 

 

다섯 번째 : 그러므로 은총과 치유의 빛이 강한 곳입니다.

 

이 다섯 번째 영성은 따라 나오는 세 가지의 영적 열매와도 연결이 되어요.

치유의 열매, 구마의 열매. 믿음의 열매

 

 

상처 없으신 분 손 들어 보세요?

 

 

 

사제는 사제대로 다 상처가 있습니다.

 

저도 이제 몇 년 더 있으면 30년 사제생활 하는데 참 상처를 많이 받고 산 사제예요.

 

저는 성당을 네 개를 지었는데 성당 지을 때마다 상처를 받았어요.

‘그것도 내 오른팔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한테.....’

 

여기 와서도 사기 당했어요.~~답변에 이어집니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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