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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05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5 조회수30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ㄴ-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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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돈이 모든 것의 질서를 세우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합니다. 세상의 모든 흐름이 돈을 누가 더 많이 쥐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고, 강대국을 나누는 기준도 이미 무력을 좌우할 수 있는 금전으로 주도권을 넘겨준 뒤 입니다. 힘이 센 국가 중심에서 돈을 쥔 국가가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며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생활의 모습까지도 바꾸어 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 역시 이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경제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렸고, 이윤이라는 부분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다스리는 이들과 다스려지는 이들의 문제가 부딪힙니다. 결국 없는 사람은 생각지도 않은 운명의 굴레처럼 가난을 짊어져야 하고, 있는 사람은 사람 위에 사람으로 인생을 출발하는 전혀 다른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묘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질서의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개인적인 노력들이 부추겨지는 치열한 세상이 된 것은 물론입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어린아이들이 배우는 자유와 평등과 인간존엄성도 이 절대 힘 앞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힘센 사람이 세워 둔 일정한 경계를 모두가 넘어서려 하면 사회를 파탄하는 사람으로 내몰릴 뿐입니다. 그러니 함께가 아니라 혼자서 윗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성공하는 이들이 존중받는 세상인 것은 당연한 이 시대의 질서입니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돈입니다.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있나?" 이 질문에 "나는 돈이 싫으니 필요없다"라고 단호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극단적인 대답 말고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조차 얼마 되지 않을겁니다.

세상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묻고 싶지만 돈이면 그 모든 것을 사고도 남는다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작용하는 세상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신앙생활은 어떤 입장일까요? 신자들이 신앙생활의 전부로 여기는 성당 안에서의 생활들, 그리고 성당에 대한 이미지도 이 돈의 힘을 넘어서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돈이 없어 안되는 일들이 많고, 돈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말은 모든 이유에 앞서 가장 절대적인 어려움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돈이 가져다 주는 이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힘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회 발전이든, 선교든, 자선 사업이든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니 이 힘을 바탕으로 사람을 성당에 모으고 있다고 표현한다해도 크게 잘못이진 않을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러나 이 돈이 늘 긍정적인 면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때로 본당에서 지원되는 돈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고, 다투고, 시기 질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돈이 가지는 가치는 때론 하느님의 은총의 크기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금전적인 성공을 이루면 무엇인가 하느님이 어여삐 보시는 것으로 당연한 감사와 찬미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이것이 다른 이들의 신앙심을 부추기는 가장 좋은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이 얼마나 성당을 성대히 유지하고 버티고 있는가가 성당의 규모와 내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심각하게는 성당에서조차 사람을 평가하고 나누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때로 이 기여도가 본당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물론 누군가 "그게 어때서요?"라고 물으면 참 할말 없을 수도 있을 지경으로 영향은 막대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돈이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예수님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결국 그 재물이 없어질 때 재물이 아닌 우리를 영원한 거처로 삼도록 하라 말씀하십니다. 재물은 그것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 아니므로 그 재물을 넘어선 가치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 안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불의한 재물을 다스리는데 성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 재물을 우리 것으로 삼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이기도 하고 그것에 욕심을 부리면 결국 사람의 참된 마음을 얻지 못하게 되리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재물을 '불의하다', '남의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그러한 이유입니다. 재물이 하느님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수단 이외에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하느님을 놓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결국 이 재물을 바라봐야 할 우리의 시선을 정리해주십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이 말씀에 하느님의 백성의 스승이라 불리는 바리사이들의 반응이 등장합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그들이 비웃은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에게 돈은 하느님과 같은 가치를 지녔습니다. 그 돈이면 불의한 일도 하지 않을 수 있고, 율법을 지키는데 무난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손에 흙도 묻히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과 부딪힐 일도 없으니 죄 짓지 않고 사는데 돈만큼 좋은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교회를 유지하는데도 이처럼 소중한 것이 없으니 재물을 무시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른 이유에서 비웃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결코 재물을 섬기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을테니 말입니다. 그저 하느님을 믿는 좋은 바탕 쯤으로 여겼다면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히 비웃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려진 예수님의 판단은 이러했습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교회에 재물을 대하는 태도는 하느님 앞에서 그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재물은 분명 우리가 함께 모이고 함께 생활하는데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중요하다고 모두가 말하는 재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섬기는지 바로 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우리는 분명 하느님을 믿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 허물어지고도 상관 없는 우리인지 냉정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고 함께 사랑하며 사는데 이 재물이 장애가 된다면 그래서 못한다 생각한다면 우리는 분명 이 재물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당장 필요한 것이 재물이라면 우리는 분명 재물 덕분에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재물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 재물 위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뽐내고 자랑하며 찬미와 찬양의 소리가 넘치고, 다른 이들 위에 선지자처럼 군림할 때 그 모습을 하느님께서 어찌 보실지 고민스럽습니다.


그럼에도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같은 고민 속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쩔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지 정답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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