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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0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5 조회수32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1월 6일 연중 제 32 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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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는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에 여러가지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른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지만 무작정 기다리고 어느날 생각지도 못한 날이라는 공포스런 느낌보다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고 있어서 그 기다림의 느낌이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온다는 소식에 등을 들고 나선 열 처녀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설 때 열 처녀의 모습은 가려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신랑이 오는 시간이 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그저 온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시간에 마중을 나간 처녀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 손에 든 등이 중요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정작 중요한 것은 등도 아니라고 알려줍니다. 등은 불을 밝히는 도구라서 신랑을 맞이하고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이지만, 정작 그 등에 기름이 없으면 신랑을 볼 수도 함께 걸을 수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 즉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의 열쇠는 기름으로 초점이 모아집니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말하는 준비라는 것이 우리 자신을 꾸미고 가꾸고 갖추는 노력이 아닐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낮 밝은 날에 하느님을 만난다면 우리는 저마다 얼마나 세상에서 잘 준비했는지를 드러낼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한 밤에 신랑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표현에서 우리가 지닌 각자의 모습들이 하느님을 만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신랑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지 잘 드러나지 않는 밤. 오직 우리는 손에 든 등으로 신랑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누군가보다 등을 잘 들고 길을 잘 찾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됩니다. 아마도 우리가 손에 든 등이란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믿고 살아온 모습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구원을 꿈꾸며 지닌 "신자"라는 이름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쌓아온 모습이 하느님을 만나는 조건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는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데 중요한 등의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등에 쓰일 기름이 무엇인가는 오히려 쉬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름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과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히 생각하시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기름은 사랑이 분명한 듯 합니다. 신랑과 신부를 연결해주는 도구, 곧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랑과 신부가 만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두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등에 쓰일 기름이라는 것이지만 그래서 더 이 기름이 하느님과 우리를 가로지르는 공통 분모인 "사랑"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복음에서 쓰인 이 기름은 신부가 기다린 시간을 통해서 보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처음 열 처녀들은 모두 기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여인들도 사랑은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기름이 모자라다는 것이 나타나는 시간적 기준점은 그녀들에게 신랑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입니다. 그녀들은 그 때까지도 모두 등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처녀들은 저마다 등을 챙겨듭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껏 등을 밝힌 기름은 그녀들을 위해 쓰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기름은 신랑을 위해 쓰인다는 쓰임새가 변하게 됩니다.


사랑이란 같은 말로 우리가 사용하지만 그 사랑이 때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으로 쓰여 우리가 설 자리를 밝혀주고 내가 누군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의 준비로도 자기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랑의 출발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의 이치에도 가깝게 살아갑니다.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것, 구원을 꿈꾼다는 것이 때때로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얻고 가져야 할 것처럼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사랑을 구원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 드러난 훌륭한 사랑이라 할 지라도 자신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사랑은 하느님을 만나는 목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비추는 의미에서 끝나버릴 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을 만날 때 사용할 기름은 자신 뿐 아니라 누구라도 비춰줄 수 있는 몫, 곧 지금 필요한 것 같지 않은 사랑을 말할 지도 모릅니다. 만나게 될 신랑은 언제 올지도, 어디서 올지도 모르는 영 오지 않는 시간 속의 사람이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불쑥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등장합니다. 그 때 사용할 기름은 분명 나를 위한 목적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기름이 사랑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하느님을 만날 때 사용할 사랑의 몫이란 적어도 자신을 위한 사랑은 아니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듯 합니다.



그저 그 날과 그 시간은 모른다고 항상 깨어 기다리라는 가르침으로 하늘나라를 대하던 우리에게 오늘 이야기는 분명 그저 기다림과 다른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분명 하느님을 알고, 신자로서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저마다 훌륭하거나 초라하거나 각자만의 등을 지닌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 필요한 것은 등에서 길을 비추고 얼굴을 비추는 기름입니다. 사랑의 의미를 잘 알고 지켜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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