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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건망증/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6 조회수547 추천수8 반대(0) 신고
 
 

요즘 건망증이 장난이 아니다. 가끔씩 내 또래의 친구들이 전화기를 손에 들고 전화기를 찾는다거나 전화벨 소리가 냉장고 안에서 울린다거나 하는 소리를 들으면 치매라며 놀려주곤 했었는데 가만히 보니 내 건망증도 보통이 아니다. 나는 주로 물건을 챙기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집을 나설 때마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센다. 밖에 나갈 때 챙기는 것을 깜박하고 그냥 나가서 가끔씩 곤욕을 치르게 되는 물품들을 하나씩 손으로 짚어보면서 세는 숫자다. 혹시라도 숫자 세는 것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바쁘게 나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다음 세 가지 중에 한 가지 정도는 빠트리기 일쑤다.

첫 번째는 지갑.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시작한 뒤부터 생긴 현상인데 지갑을 안 챙긴 날은 여학생 수녀님들이 커피 한 잔 마시러 구내식당에 내려가자는 제의를 할 것만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 불안하고 또 그런 날은 사고 싶은 책이 눈에 잘 띈다. 지갑을 챙기지 않은 날은 집에까지 다시 돌아와야 하는 몸의 수고를 감수해야만 한다.

두 번째는 손수건. 이건 신부가 된 다음부터 잘 잊어버리는 것 중의 하나다. 대학 시절에 어떤 여학생이 괴로운 일이 있다면서 나를 붙잡고는 무작정 눈물부터 흘리기 시작하기에 아무 말 없이 손수건을 쑤욱 내밀어 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너무 멋있었다. 그 뒤로 밖에 나갈 때 마다 혹시나 또 누가 나 붙잡고 울까봐 챙기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는 이처럼 내가 손수건을 챙기는 이유와는 달리 주로 땀을 닦거나 코를 푸는 등 본래 용도로만 써 왔기 때문에 손수건이 없으면 옷소매가 빨리 더러워진다.

세 번째는 묵주. 외출할 때 핸드백을 드는 여성 신자들하고 달리 남자 신자들은 주로 호주머니에 묵주를 넣어가지고 다니는데 옷을 바꿔 입고 외출할 때 거의 십중팔구 옷과 함께 옷장으로 모셔놓고는 잃어버렸다고 난리를 한바탕씩 친다. 없어도 손가락 열 개가 있으니까 큰 불편은 없지만 호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는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아무튼 건망증으로 무엇인가를 자꾸 잊어버리게 되면 몸이 고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잊어버리면 심하게 마음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내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 또 내가 신부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을 경우다.

가끔씩 내가 그리스도의 삶의 양식을 따르겠다고 길을 떠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영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을 때 몸은 좀 편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를 배반한 베드로가 가졌을 극심한 마음 고생을 한 동안 겪어야만 한다. 그 마음 고생으로는 결코 행복해 질 수가 없다. 그 마음 고생이 지갑 챙기기를 잊어버렸을 때 하게 되는 몸 고생보다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순간순간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무래도 내 신앙의 건망증세도 점점 심각해지는 듯 하다.

하느님께서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양심의 소리를 따르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며 그가 살았던 삶의 방식을 따르겠다는 세례와 서품 때의 첫마음을 잊어버리고 그저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나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것이다.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서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순간의 쾌락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행한 사람들이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지옥의 어두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빛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주님 챙기기를 잊지는 않았는지, 주님을 따르겠다는 세례와 서품 때의 첫마음을 잊지는 않았는지 숫자를 세며 물건을 챙기듯 매일 손으로 마음을 짚으면서 ‘나의 주님’을 불러봐야겠다. 주님을 챙기는 마음에 행복이 있다.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시편16,2)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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