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25,1-13; 지혜6,12 ;1테살4,13-18)
항상 깨어있어라
사랑합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사랑함으로써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세상의 종말에 있을 심판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유비무환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리 준비하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종말에 심판이 올 것이지만 준비하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심판 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 마다 한 일도 명백해질 것”(1고린 3,13)이기 때문에 준비한 사람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주님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1고린4,5).
오늘 복음을 보면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명백하게 구분되는 순간은 한밤중에 신랑이 도착하고 나서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선한 사람이 누구인지 악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고 했듯이 착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리석어도 속이 꽉 찬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12,14).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입니다”(마태3,12). 따라서 우리는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는 날 잡아서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안에서 매 순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연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여인들은 기름을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여인들은 기름이 모자랐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복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름이 모자랐다는 것은 “주님, 주님”하고 입술로는 고백하면서도 고백에 따라 생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되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앙생활만이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입니다.
하필이면 깜박 잠이든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예기치 않은 시간에 갑자기 왔습니다. 잘 준비하고 있다가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오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올게 뭐람!’ 주님께서는 오늘도 방심하는 순간에 오십니다.
김유신 장군은 말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생집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어야(마태25,13)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8절-9절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준비하는 것입니다. 준비한다는 것, 또한 깨어있음을 말해줍니다. 가장은 가장으로서, 엄마는 엄마로서의 역할이 있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에 충실 한다면 그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제 아내가 신부님께 하는 것에 반만 저에게 해도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하셨습니다. 신부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어른께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공로가 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부모님께 해야 할 바를 먼저 하십시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십시오. 사랑의 실천 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1요한4,16-17). 그리고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십자가의 성 요한).
많은 사람들이 남의 속을 알려고 애를 씁니다. 저 사람의 성격은 어떨까?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저 사람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그는 무엇을 위해서 살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음에도 남의 속을 알고 싶어 하고 궁금해 합니다. 정작 알아야 할 내 속은 알려 하지 않고 남의 속만 궁금해 합니다. 내 마음이 하느님 앞에 떳떳하고 당당한지, 그분 마음에 드는지를 먼저 알아야 처신을 바로 하지 않겠습니까? 깨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는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역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속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천국에 가면 놀랄 3가지
1. 와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
2. 못 올 것 같은 사람이 거기 와 있다.
3. 내가 거기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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