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은 영과 육의 부활이다.
우리는
지금 모습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 죽고
우리의 죽은 육체는 썩는다.
사람은 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하느님과 우주와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교회는
우리가 영과 육으로 부활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육체는
정신의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다.
우리는 육체로 모든 중요한 경험을 한다.
기쁨과 사랑, 아픔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다.
결국 우리가 영과 육으로
하느님에게 이른다는말은 우리의 본질이
하느님 안에서 구원됨을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뒤에 다시 만날 것을확신한다.
나치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사형집행인에 의해그들의 생명을 빼앗길 수는 있어도,
사랑만은 빼앗길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 뒤에도 우리의 인격적존재가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격적 존재와 자아를혼동하면 안 된다.
자아는 죽음으로 깨어진다.
죽음 뒤에 남는 것은
우리의 참 본성과 깊은본질, 우리의 자기(selbst)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 론에서
죽음 뒤의 삶을 다음과 같이 과감히 표현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쉬면서 보고,
보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찬양할 것이다.
이것이 끝없는 끝의 본질이다.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 보다 더 마땅한 끝이 있을까?”
참고한 글 “인생을 이야기 하다”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
성경말씀 밖에
우리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까?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이 세상에서 부자는 호화로운 옷에 좋은 음식에
부러울 것 없이 살았고,
라자로는 가난하였으며
종기투성이 몸으로 살면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만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루카16,23-24)
이어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고 계십니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16,27-31)
부활 때에 완성되는 인간의 구원: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15,42-52)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실천하여,
당신께서 허락하신 조그마한 일들을
기쁘게 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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