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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107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7 조회수339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1월 7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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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늘 기억하는 가르침 중의 하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죄를 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죄 역시도 상대적인 경우가 많아서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서로의 생각이나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나는 그럼에도 화를 내지않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대방이 죄를 지어버리면 나는 함께 죄의 내용으로 포함되어 버립니다. 그런 경우 우리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전히 결백함을 주장하게 됩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은 이 한마디 말로 우리의 삶에 발생하는 죄의 모습을 이야기해주십니다. 내가 스스로 저지르는 죄 말고도 죄는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죄를 짓게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누군가 나로 인해 죄를 짓게 된 경우 우리는 한사코 '내 탓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듯 외칩니다. 저 사람의 죄와 나는 상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그리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이 작은 이들 가운데"라고 등장하는 작은 이들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바꾸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들이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할까요.

작은 이를 상대적인 약자로 보게 되면 강자의 이기적 선택들로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불법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될 수도 있고, 또 율법을 기준으로 지킬 수 없는 기준의 사람들에게 율법의 조항만을 들이대어 어쩔 수 없는 죄인이 되게 만드는 경우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주 보여주시는 모습 속에서 이 말씀은 오히려 일반적인 송사보다는 착한 백성을 죄인으로 내몰고 있는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율법의 잘못된 사용에 대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을 죄인이 되는 기준으로 만드는 일을 그치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을 분노의 하느님, 보복의 하느님을 만들었으니 이는 헤어날 수 없는 큰 죄를 짓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하신다는데 우리가 만든 엄격함이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죄인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원하지 않는 죄의 발생에 대해서도 어느 한쪽에서 이기적인 선택을 하게 될 때 뜻하지 않게 생겨나는 이러한 무수한 죄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죄의 이런 모습들은 이 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상호관계에 의해 일어나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죄에 대해 우리는 용서라는 방법으로 대해야 합니다. 나로 인해 죄를 지었을수 있는 모든 사람의 죄에서 돌아 올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그를 꾸짖고 회개하면 용서하라는 이야기는 그 형제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무조건 잘못을 꾸짖고 그를 단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돌려 다시 일으키기 위해 그 죄를 꾸짖고 돌아오도록 노력한다는 이야깁니다.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용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좋아질 기약 없이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의 죄 이전에 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조건적인 법으로 여기고 죄에 대해서 용납하지 못하는 강건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스스로의 죄 한 번에 무너져 버리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죄에 대해서도 강한 기준으로 몰아부치고 그를 죄인으로 만들기 위한 꾸지람에 익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이나 용서에 관한 가르침은 사람의 약함에 대한 이해 안에 전해진 말씀입니다. 우리의 약함과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일어나는 무수한 죄의 원인들을 아시기에 그런 이해 안에서 서로를 놓지 않고 서로 보듬는 마음에서 용서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용서가 가능해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 우리는 못한다고 믿음을 달라고 청하지만 예수님은 그 믿음이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주어져 우리를 용서하는 기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 용서와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해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쓸데 없고 도저히 가망없는 돌무화과나무를 우리의 넓은 바다 속에 받아들이는 무모한 사랑을 해 보도록 마음을 즐겁게 돌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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