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슬기로운 삶 - 1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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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11-07 | 조회수37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1.11.6 연중 제32주일 지혜6,12-16 1테살4,13-18 마태25,1-13
슬기로운 삶
수도원은 이정표이자 주유소입니다. 순례 여정 중의 사람들에게 하느님 목표를 가리키는 영적 이정표이자 순례 여정 중 기름이 떨어졌을 때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영적 주유소가 수도원입니다.
하여 많은 이들이 하느님 이정표를 찾아, 또 영혼에 기름을 넣고자 주유소를 찾듯이 수도원을 찾아 피정도 하고 공동전례기도에도 참석합니다.
얼마 전의 눈에 밟히는 세 체험을 나눕니다. 참으로 어려움 중에도 성실히, 믿음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50대 자매님들입니다. “이제 곱고 깨끗한 단풍잎보다는 이런 벌레 먹고 상처 난 단풍잎이 마음에 끌립니다. 죽을 때 까지 휴식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대로 자매님의 현 심정에 대한 고백으로 들렸습니다. 또 한 분의 고백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몸도 마음도 아주 건조하고 말라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촉촉이 젖어 있는 게 아니라…” 세월 흘러 나이 들어 갈수록 가을 단풍 나뭇잎들처럼 점차 말라가는 몸과 마음입니다. 또 한 자매 역시 떠난 후에도 계속 눈에 밟혔습니다. 15년 이상을 수도원을 찾아 위로와 힘을 받고 살아가는 자매인데 강복을 주는 순간 언뜻 스친 어깨가 참 많이 여위어 있었습니다. 그대로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살아 온 삶의 반영입니다. 그래도 위의 세 자매님들, 떨어져 가는 영혼에 하느님의 기름을 채우러 영적 주유소 수도원을 자주 찾는 슬기로운 자매님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 대 어리석은 처녀의 비율이 5:5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과연 여러분의 영혼 등잔에 기름은 어느 정도입니까? 오늘은 누구나 소망하는 ‘슬기로운 삶’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하느님께 희망을 둔 삶이 슬기로운 삶입니다.
희망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희망의 사람들이 진정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희망이 우리 삶의 원동력입니다. 기름 중의 기름이 ‘희망의 기름’입니다. 희망의 빛이 사라지면 절망의 어둠입니다. 희망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희망 없으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희망의 천국을 사는 이도 있고 절망의 지옥을 사는 이도 있습니다. 희망을 잃으면 서서히 몸과 마음도 아파지고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희망의 끈 튼튼해야 영육의 건강입니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 제일 먼저 점검해야 할 사항이 희망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희망 있으면 삽니다. 희망은 빛이요 힘입니다. 절망의 어둠을 몰아내는 희망이요, 희망에서 샘솟는 힘이요 기쁨입니다. 살기위해,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희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 고백성사 때 자주 써드리는 처방전의 말씀의 약입니다.
희망의 원천인 하느님이십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절망의 죽음 넘어 희망과 생명의 주님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있으리라는 희망이 서로 격려하며 죽음을 넘어 오늘 지금 여기서 영원한 현재의 하늘나라를 살게 합니다. 이런 희망이 11월 회색 빛 위령성월을 빛나는 희망의 달로 만듭니다.
둘째, 깨어 준비하는 삶이 슬기로운 삶입니다.
희망이 깨어있게 합니다. 희망 잃으면 저절로 빛과 힘, 기쁨도 사라져 무기력, 무감각, 무의욕, 무의미가 뒤따라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심신입니다. 아무리 깨어 살려고 노력해도 희망이 없으면 도저히 깨어 살 수 없습니다. 희망이 가득 찬 이들 저절로 깨어있게 되어 심신은 빛나고 활력도 넘칩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은 이와 슬기로운 이를 확연이 갈라놓는 것이 바로 깨어있음입니다.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은 다시 오실 주님께 희망을 둔 이들임이 분명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준비성과 직결됩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기에 늘 깨어 부지런하게 기름을 준비했던 슬기로운 처녀들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희망도, 기다림도 없었기에 태만하게 준비 없이 지낸 이들임이 분명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유비무환인데… 이미 주님이 오셨을 때 기름을 준비하려니 때는 늦었고 문은 닫혔습니다.
하늘나라 잔치는 단체입장이 아니라 개인입장입니다. 아무리 함께 살아도 누구의 등불을 대신 빌릴 수도 없고 내 기름에 내 등불을 가지고 들어가야 하니 각자의 책임이 참 엄중합니다. 깨어 준비 없이 죽음을, 주님을 맞이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과연 여러분은 언제 주님이, 죽음이 오셔도 반갑게 깨어 준비했다 맞을 준비는 되어있는지요.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죽음이 올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셋째, 지혜를 추구하는 삶이 슬기로운 삶입니다.
깨어 마음 활짝 열고 준비된 삶을 사는 이들이 주로 추구하는바 지혜입니다. 세상에 지혜보다 더 좋은 보물은 없습니다. 지혜를 지닌 자들이 진정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지닌 자들입니다.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 평소 지혜를 추구했던 자들임이 분명합니다. 하느님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하느님을 찾는다 함은 바로 지혜를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어 지혜를 찾을 때 ‘지혜의 눈’이 열려 비로소 발견되는 지혜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 지혜를 찾는 이들, 지혜를 갈망하는 이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들이 바로 지금 여기 있는 지혜를 발견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멀리 있는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눈만 열리면 가까이 지금 여기서 발견되는 지혜요 주님입니다. 눈이 가리어져 어리석은 삶이요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눈만 열리면 슬기로운 삶입니다.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자체가 완전한 예지입니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집니다. ‘지혜의 빛’이 무지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바로 우리 모두 지혜자체이신 주님을 모심으로 무지의 어둠에서 해방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이듯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주십니다. 이런 지혜와의 만남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지혜는 자기를 찾는 자들을 찾아와 만나 주십니다.
세상에 미사보다 더 좋은 영적 이정표도 없고 영적 주유소도 없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자비하신 주님은 당신께 희망을 두고, 영혼의 등불 환히 켜들고 깨어 준비하고 있다가, 당신을 맞이한 우리 모두의 마음 등잔에 생명의 기름, 희망의 기름, 지혜의 기름, 사랑의 기름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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